문재인 대통령이 “범정부 차원에서 법제처를 많이 활용해야 한다. 법제처가 실제로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필요하다면 인원도 보강하라”고 9일 지시했다. 적극행정을 통한 ‘확실한 성과’를 위해 법제처의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법제처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각 부처에 ‘법제처 활용 확대’를 특별히 지시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서면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문 대통령은 “국가적 차원에서 최고의 법률 유권해석 기관은 대법원, 헌법은 헌법재판소이지만, 정부 내에서는 법제처가 최고의 유권해석 기구”라며 “각 부처가 적극적으로 법제처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법제처가 실제로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기획재정부 등에서 법제처의 직제나 인원도 필요하다면 보강해주도록 하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역할 강화 필요성을 직접 언급하는 식으로 특정 부처를 치켜세운 건 이례적이다. 청와대에 따르면 이 같은 문 대통령의 발언은 적극행정의 중요성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 임기가 2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성과 창출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법제처가 갖고 있는 법률 및 시행령의 유권 해석 기능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적극행정과 규제혁파가 필요한 현 시점에선 특히 법제처의 역할이 중요하다. 법제처가 유권해석을 더 적극적으로 한다면 적극행정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제처의 역할확대가 예산 절감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문 대통령이 힘을 실어준 이유로 꼽힌다. 부처가 외부 로펌에 의뢰하던 법률자문을 법제처에 맡길 경우, 비용 절감 효과가 적지 않다는 게 청와대 설명이다. 아울러 외부 로펌에 자문을 의뢰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보안상 문제를 차단할 수 있다는 점도 법제처 역할 확대의 긍정적 이유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특별히 법제처를 띄워주기 위한 발언이라기보단, 적극행정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법제처를 언급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직제 개편 및 인원 보강 검토까지 지시한 것 자체가 예사롭게 넘길 발언은 아니라는 해석에 무게를 싣는다. 김형연 법제처장은 이날 회의에서 문 대통령 발언에 앞서 “양질의 신속한 법률자문 업무를 개시하기 위해 지난 1월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며 “각 부처에서 법률자문을 의뢰해오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고 보고했다. 법제처가 운영하는 법령해석심의위원회의 경우 심사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반면 TF는 속도감 있게 의견을 내면서 적극행정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추가 지원까지 이뤄지면 역할 확대에 날개를 달 수 있다는 취지를 언급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날 회의 발언 등에 비춰 문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김형연 처장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 1기 청와대 법무비서관 출신의 김 처장은 문재인 정부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가 높은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대통령이 부처가 기능과 역할을 잘 하도록 독려하고, 각 부처에 활용을 당부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한편 법제처는 이날 회의에서 ‘2020년도 하반기 입법 추진대책’(이하 입법대책)을 보고했다. 지난 국회에서 폐기된 정부 입법안은 총 356건인데, 그 중 국정과제와 연관성이 큰 147건을 추려 국회에 다시 제출하겠다는 것이 법제처의 계획이다. 법제처는 “분야별로 법률을 선정하여 다음달까지 3차에 걸쳐 국회에 우선 제출할 예정”이라고 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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