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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ㆍ제도 개선하라” 새 국면 접어드는 미국 反인종차별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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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ㆍ제도 개선하라” 새 국면 접어드는 미국 反인종차별 시위

입력
2020.06.09 22:0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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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비롯한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8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아프리카 가나의 전통 복식 ‘켄테’ 머플러를 두른 채 8분 46초간 한쪽 무릎을 꿇고 백인 경찰에 의해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비롯한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8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아프리카 가나의 전통 복식 ‘켄테’ 머플러를 두른 채 8분 46초간 한쪽 무릎을 꿇고 백인 경찰에 의해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관련 법과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의회에선 민주당의 법안 발의로 경찰개혁 논의가 본격화하기 시작했고, 지역이나 기업 내 차별문화 개선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다만 이런 움직임이 보다 근본적인 사회ㆍ경제적 불평등 해소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은 8일(현지시간) 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개혁 법안 초안을 공개했다.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행사를 저지하고 면책특권을 제한하되 책임과 처벌은 강화하는 내용이다. △체포 과정에서 ‘목조르기’ 금지 △신체장착 카메라 의무 사용 △치명적 무기 사용 제한 등도 포함됐다. 펠로시 의장은 “국민적 괴로움의 순간이 변화를 위한 전국적 행동으로 바뀌고 있다”며 신속한 처리를 강조했다. 회견에 앞서 민주당 의원들은 의사당 바닥에서 8분 46초간 한쪽 무릎을 꿇고 플로이드를 추모했다.

현재로선 그러나 법안의 원만한 처리가 쉽지 않아 보인다. 백악관은 물론 상원 다수당인 공화당이 부정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여러 제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민주당 법안엔 애초부터 가망 없는 내용이 일부 있다”며 면책특권 제한을 문제 삼았다. 앞서 2014년 퍼거슨에서 비무장 흑인 청년이 백인 경찰관의 총격으로 사망했을 때도 민주당이 제도 개선을 추진했으나, 공화당이 지방정부 소관이라며 선을 그어 좌절된 전례가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설명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의 새 구호로 떠오른 ‘경찰 예산 삭감’ 문제를 콕 집어 이념 논쟁으로 몰고 갔다. 그는 전날 트위터에 “급진좌파 민주당은 경찰 예산을 삭감하고 경찰을 폐지하려 한다”고 썼다. 민주당과 대선 경쟁자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일부의 과격한 요구에 동조한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경찰개혁은 좌파와의 싸움’이라는 전선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바이든 캠프 대변인은 “경찰 예산 삭감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은 뒤 “트럼프 행정부가 경찰개혁 동력을 떨어트리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분노와 추모에서 시작된 시위의 초점은 점점 실질적인 변화로 옮아가는 분위기다. 인종차별적 문화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은 의회 밖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남부 지역에선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에 찬성했던 남부연합 흔적 지우기가 한창이다. 앨라배마ㆍ텍사스주(州) 등은 관련 인물의 동상을 철거했고, 루이지애나주의 니콜스주립대는 남부연합 지도자의 이름을 딴 건물과 도로명을 변경했다. 미 해군도 모든 시설물에서 남부연합기 게양을 전면 금지시킨 상태다.

기업들 역시 인종차별적 문화와 구성원 다양성 문제에 대한 내부 비판에 직면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스포츠의류업체 아디다스의 흑인 직원들이 경영진에 “2021년까지 전 직급에서 흑인과 라틴계열 비율을 31%까지 확대해달라”는 제안서를 보낸 사례가 대표적이다. ABC방송은 “포춘 선정 미국 500대 기업 중 최고경영자(CEO)가 흑인인 곳은 단 4곳으로 1%도 채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근본적 문제인 사회ㆍ경제적 불평등 해소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당위적인 주장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후 바이든 전 부통령조차 인종차별과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약속하면서도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AP통신은 “이번 시위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매번 뒷전으로 밀려온 흑인들의 경제적 기회를 확대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강보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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