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옥(47) 김창옥아카데미 대표는 스타 강사다. 그의 강연 동영상은 조회수가 수십만 건을 넘기기 일쑤다. 그 덕에 ‘소통 전문가’란 이름까지 얻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불통의 대상이 있다. 아버지다.
아버지는 3급청각장애가 있다.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는다. 어린 시절부터 부자지간에 높은 벽이 있었다. ‘들리나요?’는 이 벽에 도전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소통 전문가 김창옥’의 무대 밖 얼굴이 담겼다. 10일 개봉을 하루 앞두고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아버지와 관계는 김 대표의 오랜 숙제다. 밀쳐둔 숙제를 꺼내든 건 7살 쌍둥이 아들들 때문이다. 김 대표는 큰 딸 은혜하고만 친하다. 아들들이 아예 김 대표를 “은혜 아빠”라 부를 정도다. 어느 날 아들들이 다른 아이를 때렸다. 어린이집 원장을 만나 상담했더니 “아버지와의 관계가 문제”라 했다. 자신의 문제가, 아들에게까지 간다는 걸 깨달았다. 밀린 숙제를 해야겠다, 결심했다.
김 대표는 고향 제주를 찾아 아버지에게 인공와우 이식 수술을 제안했다. 아버지가 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란 기대는 없었다. 검사, 진단, 수술 등의 과정에서 아버지와 교감하고 싶었다. 유튜브 영상 촬영은 양념으로 넣었다. “유튜브라는 매개체라도 없으면 쑥스러워서 말도 제대로 못 꺼낼 것 같아서”였다. 친구 김봉한(영화 ‘보통사람’) 감독에게 사연을 이야기했더니 아예 영화를 찍자 했다. 김 대표는 ‘고급스러운 가족앨범’을 떠올리며 그러자 했다.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시작했지만, 영화는 김 대표의 삶 전반을 보여준다. 배우 조달환 등 김 대표 주변 사람들은 “소통 전문가라면서 인간 관계에 약하다” “(같이 일해보면) 힘들다”는 식으로 냉정하게 김 대표를 평가했다. 처음엔 김 대표도 화가 났다. “내게 직접 말하지 않았다”는 배신감, “내가 저 정도인가” 하는 당혹감, “현상만 가지고 하는 말”이란 서운함까지. 하지만 마지막에 남은 건 부끄러움이었다. “제가 컨설팅,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줬구나” 싶었다.
사실 ‘소통 전문가’란 수식조차도 부담스럽다. “10년 전 책을 낼 때 마땅한 이름이 없어 출판사가 고안해낸 명칭” 정도라는 것이다. 김 대표 스스로는 자신을 “강연장에선 청중과 상대적으로 소통이 잘 되지만, 나머지 소통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안 되는 바람에 소통에 관심이 생긴 사람” 정도로 여긴다. 처음엔 꼴도 보기 싫었던 영화 ‘들리나요?’에 자꾸 눈이 간 이유다. 강연 영상이 분장한 얼굴이라면 영화는 “제 민낯과 흉터 진 뒷모습을 담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에게 ‘들리나요?’는 인생의 분수령이 된 듯하다. “그 동안 강사 김창옥이라는 갑옷을 입고 살았다면 이제는 제게 걸맞는 옷을 입고 싶다”고 했다. “이제 굳이 강연을 안 해도 될 것 같다”고도 했다. “제가 나와서 보는 게 아니라 40,50년을 살아온 한 사람의 모습이라 보게 되더라고요. 겸손을 배우게 된 듯해요. 부끄럽기도 하고, 숨기고 싶기도 한 제 모습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면 고마운 일입니다.”
그래도 19년간 7,000회 넘는 강연을 소화해낸 비결은 궁금하다. “주된 관심사를 찾아내야죠. 30~50대 주부는 남편과의 관계가 가장 문제예요. 그에 반해 남자들의 화두는 오랫동안 못 찾아 힘들었는데, 최근에 알았어요. ‘나는 자연인이다’에 대한 로망은 한국 40~50대 남성의 아주 넓은 교집합이라 생각합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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