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경찰이 A기업의 주가조작 의혹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금융위원회를 압수수색한 데 대해 금융위가 공식 항의했다. 검찰이 이미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경찰이 또다시 강제수사권을 발동했다는 비판이다. 경찰은 별도의 사건이라고 반박하고 있지만, 주가조작 사건은 통상 검찰의 수사영역으로 간주되는 터라 영역다툼 내지는 기싸움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검찰은 위축되고, 경찰에 힘이 실리는 검ㆍ경 수사권 조정 여파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8일 경찰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금융위는 최근 서울경찰청 청문감사관실에 압수수색 집행과 관련해 “재발을 방지해달라”는 내용의 항의 공문을 보냈다. A기업의 주가조작 혐의를 수사하던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가 금융위의 연관성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27일 정부서울청사 금융위 자본시장조사단을 압수수색한 데 대한 항의성 공문이다.
금융위는 상장기업인 A사의 주가조작 의혹을 파악하고 자체조사를 마친 뒤 서울남부지검에 수사를 의뢰했기 때문에 경찰의 압수수색은 이중 수사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압수수색 전 경찰이 자료제출을 요구했을 때도 공문을 보내 검찰 수사의뢰 사실을 알렸으나 경찰이 묵살한 채 강제 수사를 강행했다는 게 금융위 측 주장이다.
상장사 주가조작 사건을 둘러싼 검ㆍ경 간 영역 다툼으로 비춰질 수 있는 압수수색을 경찰이 강행한 것은 이례적이다. 자본시장법은 금융당국이 주가조작과 같은 불공정거래행위를 포착한 경우 검찰총장에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은 통상 검찰이 수사를 주도해왔다. 그럼에도 경찰이 강한 수사 의지를 드러낸 것은 수사권 조정이 가까워지면서 경찰의 힘이 세지고 있는 신호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경찰이 의도적으로 금융범죄 수사에 대한 주도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도 해석된다.
경찰은 수사 중인 혐의점이 검찰 측과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용표 서울경찰청장은 이날 오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검찰과 경찰이 같은 기업을 수사하고 있지만, 세부 혐의와 대상자 등은 다르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선 경찰이 ‘이미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금융위의 공문 내용을 감춘 채 영장을 발부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검찰에 영장을 신청하면서 ‘검찰이 같은 기업을 수사하고 있다’는 금융위 측 회신 공문을 실수로 첨부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실수를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영장 발부는 적법한 절차였다”면서 수사 주체 통일 문제에 대해 검찰과 협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경찰청의 신청에 따라 해당 영장을 청구한 서울중앙지검은 영장 발부 과정을 다시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의 서류 누락에 대해서는 금융위가 이미 문제를 제기한 상황이고, 검찰은 중복수사나 절차적 문제가 있는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A사 사건을 수사 중인 남부지검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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