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삼성그룹 경영권 부정승계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삼성은 최악의 상황을 넘겼다는 반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미·중 무역갈등, 한·일 갈등 등이 겹친 비상경영 시국에서 자칫 ‘총수 부재’라는 대형 악재를 맞을 뻔했던 삼성은 당분간 이 부회장 주도로 경영 위기 타개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검찰이 이번 구속영장 청구를 통해 이 부회장 기소 방침을 분명히 한 터라 총수가 또 다시 장기간 송사에 휘말리며 리더십 불안이 재연될 거란 사내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9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삼성전자 법무팀을 비롯해 늦은 밤까지 상황을 주시했던 그룹 임직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은 3년여 만에 총수가 구속되는 사태를 피하고자 검찰 ‘특수통’ 출신 변호사들을 대거 선임하는 한편, 언론의 이 부회장 혐의 관련 보도에 대해서도 이례적으로 3차례나 반론 및 보도 자제 요청을 담은 입장문을 내는 등 총력 대응해왔다. 앞서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 경영권 승계 관련 청탁을 위해 박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한 차례 영장 기각 끝에 2017년 2월 구속돼 1년 가까이 수감됐고 현재 파기환송심을 받고 있다.
삼성 측은 이 부회장이 당분간 비상경영 체제를 지휘할 시간을 확보했다는 점을 반기고 있다. 이 부회장은 올해 들어 ‘위기 이후를 내다보는 지혜’를 강조하면서 여덟 차례에 걸쳐 국내외 경영 현장을 점검했다. 이 과정에서 시장 추정 17조원 규모의 시스템 및 메모리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 계획을 새로 발표하고,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과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사업 협력을 논의하는 등 이른바 ‘뉴삼성’ 체제의 밑그림을 그려왔다. 검찰의 구속영장 재청구가 있었던 2017년 당시와 달리, 이번 사안은 검찰 수사가 거의 마무리된 만큼 더는 영장 청구가 없을 거란 관측이 우세한 것도 삼성 측이 안도하는 이유다.
다만 파기환송심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재차 재판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 점은 삼성 입장에서 부담이다.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 3일 자신의 기소 여부를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심의위)에 맡겨달라고 신청했지만, 검찰은 다음날 전격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강수를 뒀다. 이 때문에 추후 심의위가 열리고 설령 불기소 권고가 나오더라도 검찰이 이를 따를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아무리 경영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고 해도 총수가 장기간 재판에 연루돼 있다 보니 큰 전략 수립 작업은 그간 멈춰선 상태”라고 토로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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