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8ㆍ29 전당대회가 혼전 양상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함께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는 김부겸 전 민주당 의원이 당권 도전 의지를 굳히면서 전당대회가 ‘대선 전초전’ 성격으로 판이 커지면서다. 당내 최대세력인 친문재인계ㆍ86그룹도 이 전 총리에 대한 견제에 시동을 걸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거쳤던 ‘당권 장악 후 대권 도전’이라는 이 전 총리 구상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80여일 앞으로 다가온 민주당의 차기 당권 경쟁 흐름은 4ㆍ15 총선 직후 때와 다소 달라졌다는 게 당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민주당 관계자는 7일 “유력 대선주자인 이 전 총리가 당권까지 도전하려는 데 경쟁 후보들의 견제심리가 서서히 구체화되고 있다”며 “ ‘이낙연 대세론’은 여전하지만 검증을 해 보자는 여론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고 했다.
견제의 명분으로 우선 ‘7개월짜리 대표’의 한계가 꼽힌다. 2020년 대권 도전 의사가 확고한 이 전 총리가 대표가 되면, 당 규정 상 대선 1년 전인 내년 3월 사퇴해야 한다. 이 경우 ‘당대표 대행’이 바로 내년 4월 예정된 부산시장 보궐선거부터 이끌어야 한다. 전당대회도 7개월만에 다시 치러야 하기 때문에 대선이라는 큰 목표를 앞에 둔 당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계파를 대표해 당권 도전에 나선 이들의 이해관계도 반영되는 분위기다. 친문재인계 당권주자인 홍영표 의원은 5일 연합뉴스TV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당권과 대권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후보가 당내 줄 세우기와 사당화에 앞장서고 자기 자신을 위한 대선 룰을 만드는 부작용이 있었다”고 말했다. 현 시점에서 아무리 유력한 대선주자라 하더라도 이를 섣불리 기정사실화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당내 86그룹 출신이 주축인 의원모임 ‘더좋은미래’ 역시 최근 정례회동에서 대선 주자의 당권 도전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더좋은미래 소속 한 의원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로 엄중한 시기에 전당대회가 대선 전초전, 영ㆍ호남 대결로 흐르는 게 걱정된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대선주자가 당대표가 되면 청와대의 레임덕이 빨라 질 우려도 있다”고 했다. 이 모임의 우원식 의원도 유력한 당권 주자다.
이 전 총리 견제를 위해 당권주자와 대권주자 간 ‘연대’ 움직임도 나타난다. 홍영표 의원은 최근 대선주자로 꼽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났고, 이재명 경기지사와도 만남을 추진 중이다. 우원식 의원도 최근 이재명 지사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부겸 전 의원도 조만간 다른 당권주자들과 만남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낙연 대세론이 이번 전당대회에서 확인된다 하더라도, 내년 3월 다시 치러질 당 대표 선거를 감안하면 ‘이낙연 견제’로 존재감을 발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게 이들의 판단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 전 총리 측은 과거 ‘문재인의 길’ 에 주목하고 있다. 2015년 2월 유력 대선주자였던 문 대통령 역시 ‘대선주자가 당권까지 가져가려 하느냐’는 비문재인계 진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당권 도전에 성공했다. 당시 경쟁자였던 박지원 전 의원에 3% 포인트 차이로 근소하게 이겨 ‘대세론’에 흠집이 났다. 하지만 이후 당내 지지 세력을 탄탄히 다지면서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고, 이를 토대로 대권을 잡는데 성공했다. 이 전 의원과 가까운 한 의원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국정운영 능력을 발휘하면 대세론에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당내 우군 확장을 위해서라도 견제론을 뚫고 나가는 리더십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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