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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전투' 치른 의사… "코로나 2차 대유행 대응할 현장지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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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전투' 치른 의사… "코로나 2차 대유행 대응할 현장지침 없다"

입력
2020.06.10 01:00
수정
2020.06.10 06:42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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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이 처음 확인된 날로부터 100일 이상의 긴 시간이 흘렀다. 한때 신규 확진자가 741명에 달할 정도였던 대구지역은 최근 일주일 누적 발생 확진자가 4명에 불과할 정도로 상황이 개선됐다. 대구시민의 자발적 사회적 거리두기에 의료인의 희생이 더해져 지역 의료기반이 무너지는 상황을 피한 덕분이다. 정부도 의료기관이 입은 손실이 확정되기 전에 손실보상금을 지급하는 등 의료인 지원에 나서면서 대구와 경북은 신종 코로나의 큰불을 끌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 등 수도권은 5월 황금연휴 이후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확진자들과 집단감염 사례가 급증하면서 ‘제2차 대유행’의 조짐마저 뚜렷해지고 있다. 이에 대구의 위기를 온몸으로 막아냈던 현장 전문가들은 2, 3월 대구 경북과 보건당국이 경험했던 정책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수도권 위기에 앞서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경수 교수가 대구 대명동 영남대의대 예방의학교실 회의실에서 “K방역에서 테스트와 추적, 치료(3T)가 잘 된 것은 사실이지만 핵심은 국민의 자발적 거리두기 참여였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대구의 방역전략을 짜는데 깊숙이 참여해온 이 교수는 가족과의 식사도 피하고, 집에서도 마스크를 쓴다면서 수도권 지자체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민호 기자
이경수 교수가 대구 대명동 영남대의대 예방의학교실 회의실에서 “K방역에서 테스트와 추적, 치료(3T)가 잘 된 것은 사실이지만 핵심은 국민의 자발적 거리두기 참여였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대구의 방역전략을 짜는데 깊숙이 참여해온 이 교수는 가족과의 식사도 피하고, 집에서도 마스크를 쓴다면서 수도권 지자체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민호 기자

◆정부ㆍ수도권 지자체 경각심 낮아

대규모 유행을 확인하는 계기였던 31번 확진자가 나타난 지난 2월 이후 대구시 비상대응자문단 위원으로 방역활동에 관여하며 대구의 ‘숨은 영웅’으로 불려온 이경수 영남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9일 “의료기관에 대한 보상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유행 당시에 비하면 합리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도 “수도권 유행을 막으려면 단기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수도권 유행을 대비한다는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경각심이 대구지역과는 다른 것 같다고 꼬집었다. 지난 100여일 동안 집에서도 마스크를 벗지 않을 정도로 철저했던 이 교수는 정작 정부기관의 각종 회의에선 마스크 쓴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고 말하며 이같이 밝혔다.

대규모 신종 코로나 유행이 발생했을 때 의료기관과 보건소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면 확진자 발생 규모별로 대응요령을 세밀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이 교수는 “현재 정부의 지침에는 확진자 발생 규모에 따른 시나리오별 개념이 없다”면서 “신종 코로나 환자가 집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직후, 이 환자를 누가 어디로 이송할 지부터 명확하게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전원을 지시하는 현행 체계는 일단 확진자가 입원한 뒤에 이뤄지는 한계가 있다. 지침이 세세하지 않으면 실제 상황에서 우왕좌왕할 것이라는 우려다. 이 교수는 “정부가 수도권에서 확진자 전원 훈련을 지난 주 처음으로 실시했는데 더 자주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경수 교수가 5일 대구 대명동 영남대의대 예방의학과교실 회의실에서 기자에게 신종 코로나 유행에 대응하면서 시행착오를 설명하고 있다. 이 교수는 "지금 정부가 마련한 지침은 구체적이지 않다"면서 "국민이 이전보다 조심하고 있는 만큼 대구만큼의 대유행을 발생하지 않겠지만 지자체가 앞서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김민호 기자
이경수 교수가 5일 대구 대명동 영남대의대 예방의학과교실 회의실에서 기자에게 신종 코로나 유행에 대응하면서 시행착오를 설명하고 있다. 이 교수는 "지금 정부가 마련한 지침은 구체적이지 않다"면서 "국민이 이전보다 조심하고 있는 만큼 대구만큼의 대유행을 발생하지 않겠지만 지자체가 앞서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김민호 기자

◆현장에 마스크 부족했던 이유는…

의료인력이 사용할 마스크와 방호복이 부족했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면서 현장에서 불협화음이 발생했던 것도 중앙정부의 뚜렷한 지침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현장과 거리가 먼 정부에서는 ‘마스크를 충분히 확보해 지역으로 보냈으니 (지자체가)나눠주면 되는 거 아니냐’라고 할 수 있지만 어떤 기관으로 얼마만큼 보내야 하는지를 놓고 현장에선 혼란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신규 확진자 규모별로 수용 의료기관과 처치 수준이 정해져 있다면 대응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대구 대유행) 당시 마스크 등 방역물품 사용량이 병원 별로 5배 가까이 차이 났는데 이런 수요를 누가 조정할지조차도 대비해야 한다”면서 “대구와 질병관리본부는 상황을 예상하고 결정을 빨리 내리는 경험을 쌓았지만 수도권 지자체들이 그만큼 준비가 되어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걱정했다. 이 교수는 “서울과 경기도는 지자체와 의료기관의 협업이 그나마 진행됐는데 인천이 가장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현장 대응지침 지금이라도 만들어야

지자체의 확진자 정보 관리가 부실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지자체 방역체계의 일선은 지역별 보건소가 책임지는데 이들은 질본에 확진자의 역학조사 정보를 넘기고 난 이후부터는 확진자가 어디서 어떤 처치를 받는지 모른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확진자가 발생할 때마다 지자체들이 동선을 공개하니 역학조사가 잘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전부”라면서 “보건소는 질본에 확진자 정보를 넘기고 의료기관에 확진자를 이송한 이후부터는 누가 어디서 어떤 처치를 받는지, 어떤 행정지원이 필요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대구시는 신종 코로나 대유행 당시 확진자 정보를 여러 부서가 관리하는 100여개 엑셀 표에 흩어놔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대구시는 이러한 문제 개선을 위해 확진자 이름을 검색하면 관련 내용이 한 번에 표시되는 통합 정보관리 프로그램 제작에 착수했다. 이 교수는 “보건소마다 정보담당자를 반드시 배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결국 중앙정부가 나서 시나리오별 현장대응 지침을 마련하라는 것이 이 교수의 제언이다. 지자체들은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가 검사와 추적, 치료를 중심으로 방역을 잘해온 것은 맞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라면서 “대구의 상황이 수도권에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대구=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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