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大笒) 소리를 닮은 클라리넷, 오보에 등 관악기의 차분한 전주에 맞춰 무언가를 치는 듯 “챙, 챙”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바이올린 등 현악기가 주선율에 들어서는가 싶더니, 갑자기 탬버린 반주가 찰랑댄다. 김택수(39) 작곡가의 ‘더부산조’의 도입부다. 처음 이 곡을 들으면 마치 말러의 교향곡을 접했을 때처럼 놀랄 수 있다.
‘더부산조’는 우리 전통음악 ‘산조(散調)’를 기반으로 작곡된 클래식 곡이다. 산조의 효시, 김창조(1865~1919년) 명인의 가야금 산조를 서양 악기로 재해석했다. 가야금과 장구만으로 있는 전통 산조와 달리, 오케스트라엔 여러 악기가 있다.
가야금의 주선율을 현악기, 관악기 등이 고루 나눠서 연주한다. “챙, 챙”거리는 소리는 갈대 한 뭉치로 팀파니의 변죽을 때린 것인데 장구의 반주소리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것이다. 그래서 여럿이 더불어 연주한다는 의미에서 ‘더부산조’란 이름을 붙였다. 그만큼 조화가 중요하다.
이 독특한 곡 ‘더부산조’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2017년 첫선을 보인 이래, 독특한 화성이 입소문을 타면서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선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라는 변수가 있지만, 9~10월엔 벨기에 음악축제에서 연주될 예정이다. 11월엔 미국 디트로이트에 이어 12월 뉴욕에선 지휘자 김은선과 뉴욕필하모닉이 ‘더부산조’를 연주한다.
김택수 작곡가의 의도는 단연 우리 음악의 세계화다. 이는 ‘더부산조’ 이전 행보에서도 드러난다. 2014년엔 문묘제례악을 재해석한 ‘아카데믹 리추얼-오르고 또 오르면’이란 곡을, 2016년엔 판소리를 활용한 ‘로터스 보이스(Lotus Voice)’란 곡을 선보였다.
‘더부산조’ 이후도 있다. 오는 10월 서울국제음악제에선 ‘소나타 아마빌레’란 곡이 무대에 오른다. 조선시대 기생과 무당, 어머니를 각 악장 주제로 삼은 바이올린과 피아노곡이다. 내년 3월엔 최근 유행 중인 트로트 장르를 활용한 ‘짠!!’이라는 곡도 초연해 보일 예정이다.
김 작곡가의 음악적 모험은 그의 이력에서 이미 예견됐을지 모른다. 그는 서울과학고를 거쳐 서울대 화학과에 진학했다. 1998년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서 은메달을 땄을 정도였지만, 음악에 빠져 작곡가가 됐다.
김 작곡가는 “곡을 만들 때만 해도 국악 전공자도 아닌 제가 산조의 정신을 훼손하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면서도 “외국인들은 이색적이라는 점에서, 한국인들은 우리 음악이라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해 줘 다행스러웠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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