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발 묶인 유학생·예비유학생 6인 인터뷰
새 진로 찾기·경험 쌓기 등 계획 차질…임시 인턴 등 대안 찾느라 진땀
아침 풍경이 예전과 달리 활기찹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된 덕분입니다. 각지 학생들의 등교개학이 시작된 반면, 여전히 학교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해외 대학에 재학 중인 유학생과 입학을 준비해 온 예비 유학생들입니다.
외국어를 배우고 싶어서 혹은 석·박사 학위를 따거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유학을 택한 이들. 그러나 해외 상황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6월 초 기준으로 전 세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642만명을 넘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각국은 빗장을 걸어 잠그기도 했죠. 이런 상황에서 외국에 있는 한국인 유학생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요. 유학 준비를 끝내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출국을 기다리는 예비 유학생부터 자가 격리를 마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유학생, 그리고 최근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귀국을 준비 중인 유학생까지. 이들을 대상으로 시차를 넘나들며 전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신저를 통해 물어봤습니다.
“빨리 떠나고 싶어” ‘발동동’형
박모(27)씨는 이번 가을 미국의 한 명문대 공대 대학원에 입학 ‘예정’입니다. 원래대로라면 8월쯤 미국에 가서 학교 주변 환경을 파악하고, 살 집도 계약했을 겁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하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유학의 첫 단추라 할 수 있는 비자 발급부터 삐걱대기 시작한 겁니다. 미 국무부가 현재 모든 대사관과 영사관의 일반 비자 서비스를 일시 중단한 탓입니다. 박씨는 아직 유학에 필요한 학생 비자(F-1)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비자 인터뷰마저도 11월로 미뤄졌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한 달 내지 두 달 안에 인터뷰 스케줄을 잡을 수 있었을 텐데요.
계획이 틀어질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오랜 기간 준비해온 대학원 입시도 끝났겠다, 기분전환 겸 예약해 둔 여행이 취소된 게 가장 속상합니다. 출국 전 두세 달이 붕 떠버린 박씨는 기존 연구실에서 인턴을 계속 하거나 공부를 미리 하기로 계획을 급히 수정했습니다. 그는 “코로나19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한탄했습니다.
그렇다면 박씨 주변 친구들 상황은 어떨까요. 만약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된다 해도 한 학기 유예를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합니다. 연구실이 문을 닫았기 때문입니다. 이공계 대학원생에겐 실험을 포함한 연구가 무엇보다 중요하겠죠. 그래서 “이럴 바에야 다음 학기에 연구를 함께할 수 있을 때 제대로 강의를 듣자”는 친구도 있답니다.
비단 이공계 생들만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해 한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새로운 진로를 찾은 박모(26)씨도 혼란스럽긴 매한가지입니다. 박씨는 대학생활 중 동아리 활동을 하다 음악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자신의 전공과 전혀 다른 새로운 공부를 위해 박씨는 영국으로 음학 유학을 가기로 결심했죠. 지난 한 해 동안 포트폴리오를 준비한 끝에 올해 초 영국의 한 예술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았습니다.
박씨는 학기가 시작되는 9월 즈음에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현재는 영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영국의 코로나19 확진자가 크게 늘고 있는데 학교 측에선 어떤 답도 주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씨는 “학교가 입학 유예를 해주거나 개강을 하더라도 온라인 강의로 진행할 것 같다”고 예상했습니다.
이도 저도 못하게 된 박씨의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안 그래도 남들보다 음악 공부를 늦게 시작했는데 입학까지 미뤄지면 1년을 허송세월 할지 모르기 때문이죠. 온라인 수업이 최선의 선택일 거라고 보면서도 썩 만족스럽진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체능 수업은 이론보다는 실기 위주로 진행됩니다. 음악을 배우겠다는 열정 하나만으로 유학이라는 큰 결심까지 했는데 아쉽기만 합니다. 박씨는 묻습니다. “교수의 스피커가 악기의 미세한 음 차이를 구별해낼 수 있을까요?”
“나 다시 돌아갈래” ‘한국 유턴’형
박모(27)씨와의 인터뷰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최근 미국의 한 대학에서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친 박씨는 현재 LA 한인타운에 머물고 있습니다. 자정을 넘긴 오전 3시가 넘어서야 겨우 연락할 수 있었죠. 졸업 후 한국과 미국 둘 중 어디에 살지 고민해왔던 그는 얼마 전 결단을 내렸습니다.
연이은 악재에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미국 생활을 완전히 접기로 한 겁니다. 최근 한국 행 귀국 비행기 티켓을 샀습니다. 3월 미 행정부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유학생 및 이민자 취업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했을 때도 박씨는 버텼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까지 겹치면서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고 마음 먹었다고 합니다. 박씨는 “미국에서 너무 오래 산 것 같다”고 귀국 이유를 설명했지만 불안한 마음이 싹 가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최근 까지만 해도 박씨는 미국에서 취업할 계획이었습니다. 전공(교육학)을 살려 장난감이나 교육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교육방송 관련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다네요. 코로나19로 미국의 실업자가 4,000만명이 넘었다고 하지만 교육 관련 경력으로 회사에 취업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이 점을 경쟁력 삼아 취업에 도전이 가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박씨 지인들은 미국 대선이 있을 11월까지 버텨보라고 합니다. 대선 이후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겁니다. 하지만 박씨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는 “한국이든 미국이든 상관없이 빨리 직업을 구하고 싶은 생각뿐”이라며 “혹시 상황이 나아진다 해도 다시 미국에서 일자리 찾을 생각은 없다”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다음달 한국에 돌아오면 박씨는 자가 격리를 하면서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시켜먹고 싶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제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그림을 새로 그려야 합니다. 우선 과외를 알아볼 계획이고 한국 기업 공채도 온라인 지원을 하려고 알아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취업시장도 상황이 녹록하지 않아 마음은 복잡하기만 합니다.
집 떠나 있으면 몸이 아플 때가 가장 서럽다는데, 윤모(20)씨도 그랬습니다. 윤씨는 일본의 한 전문대에서 연극을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입니다. 윤씨는 4월 하순 귀국했는데요. 공항 검역 과정에서 유증상 상태라 코로나19 검사를 받느라 하루 간 격리 시설에 머물렀습니다.
윤씨는 일본에 있을 때 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도 가지 못하고 아르바이트 자리도 사라졌다고 합니다. 생활 패턴이 망가지고 스트레스까지 쌓여 몸살이 온 겁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었다”고 속내를 터놓았습니다.
한국에 와 있어도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긴 하지만 대면 수업은 들을 수 없습니다. 학교 측에서도 외국인 학생들을 위해서 출결에는 지장이 없게 하겠다고 말했지만 실습 수업이 많은 탓에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일본의 한 극단에서 인턴 활동을 했던 그는 공연이 모조리 취소된 것도 아쉬웠다고 합니다.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코로나19 때문에 공연을 하기엔 어려웠습니다.
당장 일본 생활을 접을 생각은 없지만 한국에 남아 있는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일본에 살아보고 싶어서 유학을 택했던 그는 막상 1년 살아보니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고 했습니다. 일본 생활 자체는 좋았지만 코로나19 확산 등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감안하면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는 한국에 사는 것이 더 낫겠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 참에 군대 가자” ‘제3의길’형
중국 베이징의 한 대학에 다니는 신모(23)씨는 얼마 전 졸업 논문 심사에서 떨어졌습니다. 학부의 마지막 학기 강의를 온라인으로 들었던 게 화근이 됐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졸업 논문을 반드시 써야 했는데요. 졸업 논문은 지도교수와 소통이 매우 중요합니다. 중간중간 교수의 피드백을 받고 고칠 건 곧바로 고치는 과정을 잘 거쳐야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정보도 얻고 응원도 주고 받을 수 있는 동기나 선배들의 도움도 필요하죠.
하지만 신씨는 코로나19로 인해 이런 과정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결국 중간 점검 발표도 하지 못한 채 최종 발표를 해야 했습니다. 신씨의 지도교수는 여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요. 교수는 줌(ZOOM·화상회의 소프트웨어)으로 치러지는 중간 발표에 신씨를 뺀 몇몇 학생들에게만 발표 기회를 줬습니다. 신씨는 종강할 때까지 아무런 피드백도 받지 못하고 혼자 논문 사이트를 뒤져가며 졸업 논문을 써야 했습니다.
논문 발표 당일, 논문이 통과되자마자 하반기 공채에 지원하려던 신씨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지도교수를 뺀 다른 교수들이 신씨의 졸업 논문을 통과시켜 줄 수 없다고 한 겁니다. 인턴 경력, 필수 이수 학점 등 나머지 졸업 요건은 다 채웠지만 이번에 논문 재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신씨는 1년 뒤에야 취업 시장에 뛰어들 수 있습니다. 계획에 전혀 없던 제3의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을 맞은 겁니다.
미국 유학생 정모(21)씨는 최근 군 입대를 결정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학부를 마친 2022년쯤 한국으로 돌아와 입대하려 했습니다. 학부 전공을 간호학에서 경제학으로 바꾼 터라 중간에 휴학을 하고 한국에 와서 군대를 가기에는 부담이 컸기 때문이죠.
하지만 코로나19로 모든 수업이 온라인 강의로 바뀌면서 정씨는 군입대를 택했습니다. 학교에 나갈 일도 없으니 미국에 있어봤자 기숙사비, 생활비만 아깝기 때문이죠. 그리고 온라인 수업이 대면 수업에 비해 강의 질도 떨어진다고 생각해 휴학을 결정한 것인데요.
더구나 미국의 의료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죠. 코로나19 국면이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혹시나 정씨가 미국에 남아 있다가 병원 갈 일이라도 생기면 큰 일이죠. 4월 초 귀국한 정씨는 할아버지 댁에서 2주 동안 자가 격리를 마치고 여름 학기 수업을 온라인으로 듣고 있습니다.
물론 입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군대 가는 것 역시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닙니다. 유학생들은 영어 공인시험 점수가 필요한 카투사에 지원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카투사는 1년에 한 번, 그것도 9월부터 접수를 받기 때문에 지금 당장 군 입대를 원하는 정씨는 선택지에서 지웠습니다. 그는 “경쟁률이 높아서 떨어지면 현역으로 가야 하는데 카투사를 지원하고 결과를 기다리느라 시간을 보낼 바에는 빨리 군대를 다녀오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정씨는 최전방 부대를 지원했다고 합니다. 입대 날짜가 가장 빠른 날을 찾다 보니 택한 겁니다. 예기치 않게 귀국하면서 쓸데없이 낭비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죠. 정씨는 최대한 계획을 빠듯하게 세우며 입영 날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모님 역시 그의 선택에 “차라리 빨리 다녀오라”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셨다고 해요. 군 생활은 두렵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유학 생활이 예기치 않게 길어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합니다.
코로나19로 민 낯 드러난 선진국에서 희망 찾을 수 있을까
20대 청년 세대 사이엔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쓰였습니다. 정씨를 비롯해 많은 20대들이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에 탔던 이유도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입시·취업까지 모든 것이 경쟁뿐인 지옥 같은 한국 사회를 벗어나고 싶고,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 같은 해외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보려 했기 때문이죠.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 즉 미국만 가면 행복하게 잘살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유학을 부추기는 데 한 몫 했습니다. 정씨 또한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는 ‘인서울’이 아닌 해외에서 다른 경쟁력을 갖추고 싶었다”고 밝혔는데요.
하지만 전 세계 사람들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든 코로나19라는 변수 때문에 상황은 복잡해졌습니다. 전 세계 어디든 취업 시장은 어려워지고 있죠. 게다가 그렇게 떠나려 했던 한국은 K-방역의 성공으로 오히려 선진국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데요.
현 시점에서 유학생들은 다시 해외로 나갈지, 혹은 한국으로 돌아올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김예슬ㆍ임수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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