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정부 “시진핑 연내 방문할 환경 안 돼”
러시아와 평화조약 체결 협상도 불투명
美, 한국 포함 G11 확대 움직임에 부정적
도쿄올림픽 간소화… ‘완전한 형태’ 물거품
2012년 12월 2차 정권 출범 이후 8년째 장기집권 중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빈손 외교’에 처할 위기에 놓였다. 그간 국내 정치적 위기를 외교 성과로 만회해 왔던 아베 총리 입장에선 마땅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까지 2020년은 아베 총리에게 ‘꽃길의 연속’일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올 봄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 방일과 여름에는 도쿄 하계올림픽ㆍ패럴림픽 등 굵직한 외교 이벤트가 예정돼 있었다. 시 주석의 방일로 중일관계 격상에 이어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등 외교 성과를 개헌과 중의원 선거, 안정적 후계구도 마련 등 국내 정치의 동력으로 삼으려던 구상에 차질이 빚어진 셈이다.
당장 시 주석의 연내 국빈 일본 방문은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중국의 국가안전법 통과로 홍콩 정세가 악화하고 있고 집권 여당인 자민당에서 시 주석의 방일을 반대하는 의견이 커지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5일 보도했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전날 시 주석의 연내 방일과 관련해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코로나19를 수습시키는 것으로, 구체적인 일정을 조정하는 단계는 아니다”며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장관은 3일 BS후지에 출연해 시 주석의 방일 일정이 11월 예정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이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의 국내외 정세가 불안해 일정을 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홍콩에 대한 국가안전법 통과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고 텐안먼 시위 31주년인 전날에는 감염 확산 방지를 이유로 홍콩에서 매년 열리던 추모 집회가 허가되지 않았다. 코로나19 대응 이후 격화하고 있는 미중 갈등도 걸림돌이다.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연내 시 주석을 맞이할 환경이 안 된다”고 밝혔다.
나카야마 야스히데(中山泰秀) 자민당 외교부회장은 전날 총리관저에서 스가 장관과 면담 후 중국과 영유권 갈등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주변의 중국 공선의 항행을 비판하는 결의문을 전달했다. 지난달 29일에는 시 주석의 국빈 방일을 재검토해 달라는 요청서를 제출한 바 있다.
러시아와의 평화조약 체결 협상도 앞이 보이지 않는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대독일 승전기념일에 맞춰 러시아를 방문, 교착상태인 러일 평화조약 협상을 타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승전기념일 행사가 코로나19로 이달 24일로 연기됐고, 러시아는 구소련 국가 외에는 초청하지 않을 예정이다. 쿠릴 4개섬 반환 등을 포함한 러일 평화조약 체결은 이른바 아베 총리의 정치적 유산 중 하나로 거론됐지만, 아베 총리의 임기인 내년 9월까지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나마 9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는 아베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미일동맹을 과시할 수 있는 계기로 거론된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등 4개국을 거론하며 G10 또는 G11로 확대 재편하려는 의향을 밝히자, 일본 정부는 미국의 진의 파악에 나서고 있다. 외무성에선 한국 등의 참여에 대해 “아시아의 유일한 G7 참가국이라는 일본의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는 견해가 나오는 등 벌써부터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아울러 내년 7월로 연기된 도쿄올림픽도 코로나19의 장기화로 간소화를 검토하면서 아베 총리가 목표로 한 ‘완전한 형태’에서 멀어졌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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