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서울역 ‘묻지마 폭행’의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경찰이 피의자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체포영장을 발급받지 않았고, 영장 없는 긴급체포의 요건도 갖추지 않은 상태였다는 게 법원의 지적이다.
서울중앙지법 김동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4일 상해 혐의를 받는 이모(32)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례적으로 1,200여자에 걸쳐 장문으로 경찰 긴급체포의 위법성을 기각사유로 밝혔다.
이씨는 지난달 26일 오후 1시 50분쯤 서울역에서 택시를 부르기 위해 서 있던 30대 여성 A씨에게 주먹을 휘둘러 중상을 입힌 혐의(상해)를 받는다. 이 사건으로 A씨는 눈 근처 피부가 찢어지고 왼쪽 광대뼈가 골절된 것으로 알려졌다.
상해 용의자를 쫓던 경찰은 2일 오후 7시 15분쯤 서울 동작구의 자택에서 이씨를 검거했다. 경찰은 이씨의 주거지를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며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응답하지 않자 강제로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이씨를 긴급 체포했다. 당시 경찰은 별도로 이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 부장판사는 이 경우가 영장 없이 긴급 체포할 수 있는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로 김 부장판사는 “경찰이 이씨의 이름ㆍ주거지ㆍ연락처를 파악하고 있었고, 주거지에서 잠을 자고 있어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형사소송법상 영장 없이 피의자를 체포를 할 수 있는 경우는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상당한 혐의가 있고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 또는 도주우려가 있는 경우 중에서도 △체포영장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긴급한 때로 제한된다. 상해죄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범죄로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기는 하지만, 법원은 당시 정황상 이씨를 긴급하게 체포할 필요는 없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 부장판사는 “이 같이 긴급체포가 위법했던 이상, 그 긴급체포에 기초한 이 사건의 구속영장 청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한 사람의 집은 그의 성채라고 할 것인데 비록 범죄혐의자라도 헌법과 법률에 의하지 않고서는 주거의 평온을 보호받는데 예외를 둘 수 없다”고 덧붙였다.
윤주영 기자 roza@han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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