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일본 기업 자산 매각 조치 시작...외교부 “사법 판단 존중”
日 반발 속 지소미아, WTO 제소 난제도 수두룩
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관련 서류를 ‘공시송달’ 방법으로 일본 기업에 전달하기로 하면서 한일관계가 또다시 고비를 맞게 됐다. 일본 정부는 즉각 대항 조치를 예고했지만 외교적 해법 마련은 요원한 상태다.
외교부는 4일 법원의 결정과 관련해 “사법 판단을 존중하고 실질적인 피해자의 권리 실현과 한일 양국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열린 자세로 협의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1일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에 대해 채권압류명령결정 등의 공시송달을 결정했다.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에 의해 압류한 자산을 강제 매각해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기 위한 절차다.
일본 외무성은 외국에서 일본 개인ㆍ기업이 피고가 된 민사 재판 관련 서류를 우선 접수한 뒤 당사자에게 전달한다. 한국 법원은 지난해 1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압류결정문을 일본 측에 전달했으나 반응이 없었다. 외무성이 자산 매각 절차를 지연시키기 위해 송달을 거부했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이처럼 일본 정부는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는 절대 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지난해 7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배제하는 등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에 나선 것도 강제동원 배상 판결 보복 조치로 간주됐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장관은 앞서 3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도 “한국 내 일본기업 자산의 현금화가 이뤄지면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것이므로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언급했다.
법원은 포항지원이 정한 공시송달 기간인 8월 4일 0시부터 압류된 일본제철의 국내 자산에 현금화 명령(매각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다만 실제 매각 명령이 가능한 시기는 이르면 연말쯤일 것으로 보인다. 채무자 심문과 압류 자산에 대한 감정 등 거쳐야 할 절차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부 내부에서는 일본이 경고하고 있는 대항 조치 역시 매각 명령이 내려져야 구체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양국 정부가 외교적 해법 모색을 할 수 있는 시점은 매각 명령 전까지일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완화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카드를 들고 물밑 협상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돌파구 마련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양국 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었던 지난해 여름과 비슷한 상황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매달 이어오고 있는 한일 외교 국장급 협의에서도 당장에 묘수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전언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양국 정부 간에 배상안 합의가 되고, 국내 대책도 정리돼야 하는데 둘 다 난제”라면서 “매각 명령 전에 합의가 되지 않으면 지난해처럼 일본의 반응을 보고 대책을 마련하는 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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