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ㆍ현직 국방장관, 트럼프에 반기… “병력 동원 선택지는 마지막 수단”
시위대 ‘어메이징 그레이스’ 합창하며 평화 집회…약탈 방화는 없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된 ‘인종 차별’ 반대 시위에 연방군 투입 속내를 드러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 한 발 물러섰다. 평화 기조로 전환한 시위 양상의 영향도 있지만 “국민을 군대로 제압하겠다”는 트럼프의 위험한 발상에 반발 여론이 거셌기 때문으로 보인다. 본질적으로 외국의 위협으로부터 조국을 수호하는 미군의 존재 이유를 트럼프가 부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언론 인터뷰에서 ‘군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겠느냐’는 질문에 “상황에 달려 있으나 그렇게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앞서 1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시위를 ‘테러 행위’로 규정하고 주(州) 방위군 대응이 미흡할 경우 연방군을 투입하겠다는 강경 입장에서 후퇴했다고 볼 수 있다.
여러 이유가 그의 인식에 균열을 냈지만 미 언론은 군의 반발을 가장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의 충복으로 꼽히는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부터 반기를 들었다. 에스퍼 장관은 이날 생중계된 TV 브리핑에서 “병력 동원이란 선택지는 최후 수단으로 사용돼야 한다”며 “(군 동원을 명시한) ‘폭동진압법’ 발동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와 갈등을 빚다 경질된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도 이날 미 시사지 애틀랜틱 기고문에서 “대통령이 우리를 분열시키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군 내부 동요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에 “누구도 군대가 거리에 배치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마크 밀리 합참의장 역시 군 동원에 반대 의사를 백악관에 전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국내외 지도자들도 트럼프식 대처에 비난 일색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평화적이고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는 시위대에 감사해할 것”이라며 ‘경찰 개혁’이란 시위 이후 화두를 던졌고,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역시 사회 시스템 변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트럼프와 가까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마저 “전 세계, 영국이 느끼는 분노와 슬픔을 정확히 이해한다”면서 시위대를 지지했다.
이날로 9일째를 맞아 폭력 색채가 확연히 줄어든 시위 기조도 트럼프의 군 투입 주장을 옹색하게 만들었다. 외신에 따르면 이날 백악관 인근에 모인 시위대는 사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무릎 꿇기’ 퍼포먼스와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합창하며 평화 집회의 진수를 보여줬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시애틀 등 대도시에서도 시위는 계속됐으나 방화와 약탈 행위는 없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조나단 스티븐슨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선임연구원은 트럼프의 군 동원 발상에 미국사회가 반발하는 이유를 “대통령이 미군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일간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미군은 역사적으로 중국 인민해방군과 달리 외부의 위협과 해외 작전에 집중해 왔다”고 말했다. 때문에 국내법 집행을 위해 군을 이용하는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행위다. 1807년 제정된 폭동진압법이 그 동안 고작 20차례, 그것도 주정부 요청으로 발동된 역사만 봐도 그렇다.
한편, 미네소타주는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연루된 전직 경찰관 4명을 이날 전원 형사 기소했다. 주범 격인 데릭 쇼빈에게는 3급 살인 혐의에 덧붙여 2급 살인 혐의가 추가 적용됐고, 나머지 3명도 2급 살인 공모 및 2급 우발적 살인에 대한 공모 혐의로 기소됐다. 우리 외교부는 이날까지 한인 피해 건수는 전날보다 27건 증가한 126건이라고 밝혔다. 필라델피아가 56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정확한 인명 피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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