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 표출 자체 금지 아닌 결과물 삭제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 제한 크지 않아”
일부 배상 인정 2심 판결 뒤 5년 만에 판단

해군본부가 해군기지 건설 사업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정치적 성향이 있다는 이유로 해군 홈페이지에서 삭제한 조치는 위법한 직무집행이라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항소심 선고 뒤 대법원 판결까지 무려 5년이나 걸렸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4일 제주해군기지(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 건설에 반대하는 글을 해군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일괄 삭제된 데 대해 게시자 박모씨 등 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던 원심 판단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항소부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해군본부의 삭제 조치는 인터넷 공간에서 벌인 항의 시위의 ‘결과물’을 삭제한 것일 뿐, 반대 의견 표출 자체를 금지하거나 제재한 것이 아니어서 집단적 항의글 게시자들의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에 대한 제한 정도는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해군본부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위법한 직무집행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대법원은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에 비춰 해군 홈페이지가 정치적 논쟁의 장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도 부연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에 관한 국방부 장관의 실시계획 승인처분에 주민들이 주장했던 절차상 문제 등은 없는 것으로 판단한 2012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도 해군본부 조치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근거로 들었다. 해당 사업 결정권자가 국방부 장관인데, 결정권이 없는 해군본부에 항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설명도 더했다.
박씨 등은 해군기지 건설을 놓고 갈등을 겪던 2011년 6월 9일 “해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항의와 공사 중단 요청 글을 남기자”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 글은 수십 차례 리트윗 됐고, 당일 자유게시판에는 박씨의 글을 비롯한 100여건의 반대 글이 올라왔다. 그러나 해군은 “게시물들이 일방적 주장 위주라 국가나 제주 강정마을에 도움이 안 된다”는 취지의 공식 입장을 밝히고 문제의 글들을 일괄 삭제했다.
1심은 “박씨가 해군기지건설 중단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다음날 트윗글을 올린 점 등에 비춰 해군 담당자가 게시물을 정치적 성향의 글로 판단할 여지가 있었다”며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해군 홈페이지 운영규정에는 ‘정치적 목적ㆍ성향이 있거나 특정기관ㆍ단체를 근거 없이 비난할 때 삭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2심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은 “단시간에 올라온 게시글들이 야당과 입장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판단해 삭제한 조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게시글은 당시 공적 관심사인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한 국민이 의사를 표명한 것이며, 이런 표현의 자유에는 자기 의견을 유지하고 존속할 자유까지 포함된다”며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원고들에게 30만원씩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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