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렵고 낯선 과학책을 수다 떨 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읽어본다, SF’를 썼던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5>닐 포스트먼 ‘죽도록 즐기기’
아직 20세기 청년이었을 때 이야기다. 스마트폰 따위는 없던 그 시절만 하더라도 지하철을 타면 신문을 보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그때의 소소한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옆 사람이 읽는 스포츠 신문을 훔쳐보는 일이었다. 내 돈 주고 산 적이 없는 스포츠 신문에는 적당히 자극적인 사진과 함께 평소에 접할 수 없는 연예인의 가십으로 가득했다.
그러다 21세기가 되면서 세상이 달라졌다. 대형 포털 사이트가 한국 사회의 공론장을 접수하면서, 나에게 일어난 큰 변화가 있다. 유명인(셀럽)의 온갖 시시콜콜한 개인사를 꿰게 된 것이다. 남들이 찾는 검색어에 신경 쓰지 않고 살 만큼 줏대 있는 사람이 아닌지라,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그런 가십을 찾아보는 데에 한두 시간이 훌쩍 가기도 했다.
물론 그런 시시콜콜한 정보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데는 쓸모가 적다. 이렇게 말초적이고 자극적이고 소소한 것만 좇다 보면,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옳다/그르다’보다 ‘좋다/싫다’로 세상사를 판단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모든 일이 ‘좋다/싫다’로 나뉘니 얼마나 명쾌한가.
놀랍게도 이런 세상을 35년 전에 정확히 예측한 사람이 있다. 미디어학자 닐 포스트먼은 1985년에 펴낸 ‘죽도록 즐기기’에서 사람을 통제하는 방식이 두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조지 오웰의 ‘1984’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방식이다.
‘1984’의 빅 브러더는 모든 걸 감시하고, 모든 걸 억압하고, 모든 걸 통제하는 방식이다. 포스트먼에 따르면, 오웰의 빅 브러더 방식은 낡았다. 오히려 헉슬리가 말했던 ‘멋진 신세계’ 방식의 통제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웰은 누군가 책을 금지할까 두려워했다.” 하지만 현실은 헉슬리가 예고했던 “굳이 책을 금지할 만한 이유가 없어진” 세상이다.
오웰은 빅 브러더가 과학 기술을 활용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사회를 경고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우리는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데도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소셜 미디어에 올리면서 모두가 모두를 지켜보는 사회를 만들었다. 오웰은 ‘정보 통제’를 두려워했지만, 현실은 헉슬리가 말했듯이 정보가 넘쳐서 즉 ‘정보 과잉’ 때문에 중요한 사실(fact)을 놓친다.
“오웰은 진실이 은폐될 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현실은 헉슬리가 말했듯이 “비현실적 상황” 그러니까 요즘 표현대로라면 ‘탈진실(Post-truth)’이 “진실”을 압도하는 상황이다. 20세기라면 동네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털이 덥수룩하게 난 괴짜 아저씨의 몽상으로 그쳤을 음모론에 많은 사람이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그 단적인 예다. 포스트먼은 이렇게 목소리를 높인다.
“오웰의 ‘1984’에서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해 통제한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는 즐길 거리를 쏟아부어 사람들을 통제한다. 한마디로, 오웰은 우리가 증오하는 것이 우리를 파멸시킬까 두려워했다. 헉슬리는 우리가 좋아서 집착하는 것이 우리를 파멸시킬까 두려워했다. 오웰이 아니라 헉슬리가 옳았다.”
죽도록 즐기기
닐 포스트먼 지음ㆍ홍윤선 옮김
굿인포메이션 발행ㆍ272쪽ㆍ1만6,800원
21세기에 읽은 책 가운데 나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것을 꼽으라면 ‘죽도록 즐기기’를 꼽겠다. 안타깝게도 보수 정부 9년 동안은 이 책의 가치를 강조해도 선뜻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시대착오적인 권위주의를 고집하는 한 줌도 안 되는 정치 세력의 행태가 세상의 변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드디어 열렸다.
강양구 지식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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