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명의 사람들이 물건을 훔쳐가는 걸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요.”
미국 일리노이주(州) 시카고 사우스사이드에서 의류점을 운영하는 한인 김학동씨는 지역매체 시카고CBS를 통해 지난달 31일 밤 느꼈던 공포와 무력감을 전했다. “제발 그만하고 나가달라”는 그의 요청에 처음에는 돌아서는 듯하더니 시위대 인원이 불어나자 너도나도 물건을 훔쳐가기 시작했다. 경찰서에서 고작 800m 남짓한 거리인데도 인근 상점들이 죄다 약탈을 당해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김씨는 “시위는 이해하는데 왜 소규모 상점들을 부수고 물건을 가져가는지 모르겠다”면서 “이건 정말 옳지 않다”고 호소했다.
경찰의 과잉진압에 흑인 남성이 사망한 사건으로 촉발된 대규모 시위가 미 전역을 휩쓸면서 김씨와 같은 한인들의 피해 소식도 잇따르고 있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 사태 수준은 아니지만 치안 공백으로 일부 시위대의 약탈 행위가 끊이지 않아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에서 벗어나 경제활동을 재개하던 시점에 또 다른 악재가 터지자 한인사회는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각 지역 한인회들은 직접 피해 신고를 받고 복구 지원을 하는 등 교민 보호활동에 나서고 있다.
외교부는 3일 오전 9시 현재 미국 내 시위 과정에서 한인 상점들의 피해 사례가 99건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접수되지 않았으나 전날(79건)보다 20건이 늘었다.
피해 신고가 가장 많은 곳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50건)다. 교민 수(약 7만명)가 많은 편인데다 흑인을 상대로 한 미용용품 판매업에 종사하는 한인이 많아 피해가 큰 것으로 전해졌다. 샤론 황 필라데피아 회장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펜실베니아 주방위군이 배치됐으나 도심 한복판에 주로 있고 한인 상권에는 배치되지 않았다”면서 “경찰은 약탈을 모두 당한 다음에야 온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폭동의 기억이 남은 LA에선 피해 사례가 3건 집계됐지만 경계를 풀 수 없는 상황이다. 폭동 당시와 달리 한인을 직접 겨냥한 폭력 행위는 없으나 치안 공백 상황이 반복되긴 마찬가지다. 라디오코리아뉴스에 따르면 1일 밤 한인타운의 한 피부미용실이 피해를 입었다. 해당 상점은 유리창이 깨지고 내부의 모든 서랍이 어지럽게 열려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외에도 워싱턴 백악관 인근의 주류점,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스포츠웨어 상점, 조지아주 애틀란타의 음식점 등이 물건을 도난 당하거나 시설물이 파손되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그나마 악재 속에서 피해 상점들의 복구를 돕는 지역사회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2일 애틀란타한인뉴스포털에 따르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한 한인식당은 시위 과정에서 상점 내ㆍ외부가 파손됐으나 인근 군사대학교 시타델칼리지 학생 등의 도움으로 복구를 시작했다. 이 대학 출신 단골손님의 도움으로 기부 사이트를 통해 1만6,486달러(약 2,005만원)의 피해복구기금도 조성됐다.
각 도시별 한인회들도 자체적으로 피해 신고를 받거나 시위 일정을 공지하는 등 교민 보호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LA한인회는 2일 자체 순찰대를 꾸린다고 발표했다. 주방위군과 경찰이 순찰하지 않는 지역을 돌며 약탈 행위를 포착하면 경찰이 즉시 출동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강보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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