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없애자는 ‘법사위 체계ㆍ자구 심사권’ 순기능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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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없애자는 ‘법사위 체계ㆍ자구 심사권’ 순기능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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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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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월 본회의 통과한 법안 546건 분석해보니

상임위안 그대로 통과 법안 42%... 30일 미만 심사 통과는 52%

“무작정 폐지보다 보완책 마련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현안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월권과 발목잡기 수단이 돼온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ㆍ자구 심사권을 제거해야 한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177석 ‘슈퍼여당’ 민주당이 최근 ‘일하는 국회’ 개혁 명분으로 원 구성 협상에서 법사위 체계ㆍ자구 심사권 폐지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법사위는 여야가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의결한 법안을 넘겨 받아 기존 법과 충돌하진 않는지, 자구(字句)가 적절한지 등을 심사한다. 이 ‘입법 품질 관리’ 단계를 넘지 못하면 본회의 표결에 부칠 수 없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에 대해 “특정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폐지론에 힘을 싣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대 국회 막바지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 500여건을 분석한 결과, 법사위의 체계ㆍ자구 심사권은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민주당 주장대로 역기능도 있지만 소관 부처나 이익단체의 입김에 휘둘릴 수 있는 상임위 법안 심사를 보완하는 측면도 분명 존재했다. 이를 고려하면 무작정 폐기보다는 역기능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보완 하는 방향에 설득력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일보는 3일 지난 1~ 5월 20대 국회에서 열린 8번의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 중 체계ㆍ자구 심사를 거친 법안 546건을 분석했다. 우선 이중 체계ㆍ자구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 상임위안(案) 그대로 법사위를 통과한 ‘원안가결’ 법안은 231건(42.3%), 내용이 바뀐 ‘수정가결’ 법안은 315건(57.7%)이었다. 수정 사유는 오자 등 ‘경미한 자구수정’(50.2%), 기존 법과의 충돌 여부 등을 보는 ‘정합성 심사’(41.9%) 등이 다수였다. 546건 법안의 평균 심사 기간은 60일이었다.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 70%가 90일 안에 법사위 문턱을 넘었다. ‘법사위만 가면 법안이 함흥차사’라는 일각의 주장과는 다른 결과다.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 소요기간

물론 폐단 또한 확인됐다. 먼저 특정 정당이 심사를 명목으로 법사위에 300일 이상 잡아둔 법안은 5건(0.9%)으로 집계됐다. 군 영창 제도를 폐지하는 군인사법 개정안은 2017년 9월 상임위를 통과했지만 2년 2개월이 지난 지난해 11월에서야 법사위를 통과했다. 야당 의원이 체계ㆍ자구와 무관한 ‘군 기강 약화’를 이유로 반대해서다. 세월호 피해자 범위를 민간 잠수사로 확대하는 특별법 개정안도 야당의 ‘몽니’에 법사위 서랍에 무려 800여일간 잠들어 있었다. 국ㆍ공립대가 여성 교원을 25% 이상 임용하도록 하는 교육공무원법 개정안 또한 체계ㆍ자구 문제가 없었지만 1년 가깝게 계류됐다. 야당 의원이 “과잉입법”이라고 주장하면서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법안 핵심 내용을 수정해 월권 논란에 휩싸인 경우도 있었다. 대기업 이사회에 여성 이사를 최소 1명 이상 두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체계ㆍ자구 심사를 거치며 ‘특정 성(性)의 이사만으로 구성하지 아니한다’는 의무 조항이 ‘노력한다’는 권고조항으로 바뀌었다. 해당 상임위인 정무위에서 반발, 결국 본회의서 원안으로 처리됐지만 법사위 월권의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됐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신속한 피해구제를 골자로 하는 특별법 개정안도 핵심인 피해자의 입증책임 완화 부분이 법사위에서 대거 손질됐다.

특정정당 이해관계로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에 300이 이상 소요된 법안.

그렇다고 순기능이 없는 건 아니다. 체계ㆍ자구 심사는 상임위에서 처리된 ‘반쪽’ 법안을 둘러싼 이해관계를 최종 조율하거나, ‘게이트키핑’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이번에 분석한 546개 법안 중 14건은 상임위 통과 이후에도 재정당국 혹은 관계부처의 ‘입법 반대’로 체계ㆍ자구 심사를 거치며 수정됐다. 또 상임위를 통과하고도 법사위에 계류됐다 폐기된 30여건의 법안 중 12건도 관계부처 간 이견이 있는 안건이었다. 상임위 차원에서 충실한 법안 심사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얘기다.

세무사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1월 기획재정위원회는 세무대리 핵심인 ‘장부 작성’ 등을 제외한 6개 업무만 변호사에 허용하는 개정안을 처리했다. 그러자 변호사 업계와 법무부 등이 “위헌성이 있다”고 반대했고, 결국 법사위를 넘지 못했다. 민주당에서도 “기재위가 한쪽 입장만 듣고 법안을 처리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12년간 법사위원을 지낸 박지원 전 의원은 “상임위에서는 이익단체에 이익이 되는 법안을 종종 넘기는데, (법사위서) 잡아줘야 한다”고 했다.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은 “농해수위 법안심사에서 민주당 위원이 ‘이렇게 하시지요. 상임위는 통과하고 법사위 가서 기재부와 협의하라고’ 하는 등 떠넘기기가 일상화됐다”고 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체계ㆍ자구 심사권을 무작정 폐지하기보다는 입법 품질의 제고라는 순기능을 극대화하고, 발목잡기 등 역기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문제의 본질은 심사가 아니라 법사위원 1명의 몽니 때문에 법안이 처리되지 못하는 구조”라며 “심사 기한을 30일이든, 60일이든 정해두고 기한 내 처리되지 못하면 본회의에 자동 상정하는 방식의 보완책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체계ㆍ자구 심사를 기술적 검토에 특화된 국회의장 산하 별도 기구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이 경우 “의원 입법권을 법률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옳은가”하는 의문은 남는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법사위 체계ㆍ자구 심사에 따른 법안심사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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