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닮아 공부 잘한다? “유전자 변이 34%, 그 사람만 갖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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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닮아 공부 잘한다? “유전자 변이 34%, 그 사람만 갖고 있어요”

입력
2020.06.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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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아는 엄마 기자] '닮지 않은' 아이의 모습 존중해 줘야

게티이미지뱅크

“쟤는 도대체 누굴 닮은 걸까?”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과 때때로 주고받는 말이다. 비단 우리 집뿐 아니라 아이가 있는 집이면 어디나 마찬가지일 터다. 아이의 생각이나 행동, 재능 등이 엄마나 아빠와도, 가족 중 누구와도 비슷한 것 같지 않아 보일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대체 누구한테 물려받았나, 어디서 저런 녀석이 나왔나 하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이런 대화에는 아이가 아빠나 엄마 어느 한쪽은 꼭 빼 닮아야 자연스럽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전의 막강한 영향력을 감안하면 부모랑 전혀 다른 자식의 모습은 쉽게 수긍이 가질 않는다. 얼굴은 어릴 적 사진 속 자신과 붕어빵인데 하는 짓은 당최 다르다면 부모 입장에선 참 희한할 노릇이다.

유전의 영향이 절대적일 거라는 예상을 전제로 부모들은 아이의 키나 지능을 미리 재단하기도 한다. 요즘엔 아이 키가 얼마나 자랄 지 예상하는 계산 공식까지 나와 있다. 아이가 남자라면 아빠와 엄마 키의 평균 값에 6.5㎝를 더한 만큼, 여자라면 뺀 만큼 자란다는 것이다. 이대로 계산한 아이의 미래 예상 키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부 부모들은 키를 조금이라도 더 키우기 위해 아이에게 무리한 운동을 시키거나 약까지 쓰기도 한다.

유전의 힘을 근거로 공부 잘 할 아이와 그렇지 못할 아이를 너무나 쉽게 구분 짓기도 한다. ‘누구 아빠가 변호사’, ‘누구 엄마는 의사’, 이런 말들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정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끊임 없이 공유되는 데는 부모가 공부 잘 했으면 아이도 그 지능을 물려받았으니 당연히 성적이 우수할 거라는 믿음이 뒷받침돼 있다.

부모 자식 간의 닮음을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인 유전자는 사람의 세포마다 약 2만5,000개씩 들어 있다. 이들 유전자에 담겨 있는 정보들은 얼굴 생김새와 키 같은 외모뿐 아니라 성격과 지능, 체질, 질병 가능성 등으로 나타난다. 과학자들은 유전 정보가 반영돼 겉으로 드러나는 이런 특성들을 표현형이라고 부른다.

표현형은 유전자와 정확히 일대일 대응되지 않는다. 둘 이상의 유전자가 자기들끼리, 혹은 외부 환경 요인과 끊임 없이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에 담겨 있는 정보가 발현되기도 하고 억제되기도 한다. 유전 정보는 발현이 돼야 표현형으로 나타난다. 부모에게 특정 유전자를 물려받았어도 아이에게선 그 유전 정보가 표현형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유전자가 아이에게서도 부모에서와 똑같은 방식으로 상호작용 하란 법도 없다. 서로 다른 유전자 상호작용은 표현형의 차이를 낳을 수 있다.

유전자의 변형도 개인 간 차이를 만들어낸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라고 해서 평생 부모와 똑같다는 보장은 없다. 유전자는 염기라고 불리는 단위 물질들이 일렬로 배열된 형태다. 유전자는 다양한 이유로 이들 염기의 배열 순서를 종종 변화시키는데, 이를 과학자들은 변이라고 부른다. 때로는 미세하게, 때로는 큰 폭으로 생기는 유전자 변이는 표현형에도 다양한 변화를 일으킨다. 질병이나 환경, 음식 등에 대한 반응이 개인마다 천차만별인 주된 이유를 과학자들은 이 같은 유전자 변이에서 찾는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연구진이 한국인 1,094명의 전체 유전자를 분석해 국제학술지인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의 지난달 27일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진 유전자 변이의 3분의 1 이상이 개인 특이적이다. 한국인 고유의 유전자 변이들 가운데 개인이 남들과 다르게 갖고 있는 독특한 변이가 34.5%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연구를 주도한 박종화 UNIST 생명과학부 교수는 “예상보다 훨씬 높은 비중이라 연구진도 깜짝 놀랐다”며 “각각의 개인이 얼마나 특이적인지를 잘 보여주는 수치”라고 설명했다.

내가 낳은 아이라도 나와 유전적으로 결코 동일하지 않다. 유전자들의 상호작용과 크고 작은 변이가 부모와 자식 간에도 차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나와 남편은 운동에 별로 소질이 없는데 아이는 축구와 농구에 빠져 사는 게 어쩌면 유전자 변화가 낳은 개인 특이성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유전을 근거로 어른이 아이에 대해 단정적 판단을 내리는 건 섣부르다.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아도 부모가 아이의 생각과 개성을 존중해주고, 바라는 만큼을 이루지 못해도 자신과 비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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