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1학기 중간고사를 온라인으로 치른 국내 주요 대학에서 집단 부정행위가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다. 인하대 의대 본과 1·2학년 학생 109명 중 91명이 온라인 시험 도중 부정행위로 전원 0점 처리된 데 이어, 연세대ㆍ서강대ㆍ한양대에서도 부정행위가 확인되거나 의심 정황이 나와 학교 당국이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편의를 위해 암기식 시험과 대형 강의를 확대해온 대학들은 대체로 온라인 시험 부정행위를 근절할 뾰족한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담당 교수들이 독자적으로 책임지고 단속하는 수밖에 없다는 비관적인 해법만이 나올 뿐이다.
◇ 줄줄이 온라인 부정…대다수 교수 재량에 맡겨
서강대는 지난달 중순 온라인으로 치러진 수학과 2개 과목 중간고사에서 일부 수강생이 함께 모여 시험치는 모습을 다른 학생들이 발견, 부정행위 의심 신고가 접수돼 해당 시험 성적을 무효 처리했다. 연세대도 학생 300여명이 듣는 한 교양과목 온라인 쪽지 시험에서 학생들끼리 답안을 공유한 사실이 드러났고, 한양대에서는 지난달 학생 커뮤니티에 ‘돈을 받고 (온라인) 시험을 대신 쳐주겠다’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됐다.
기말고사를 앞둔 대학들은 부정행위 방지책을 고민 중이다. 대규모 온라인 시험 부정 논란이 일자 경희대, 고려대 등은 기말고사 대면 시험을 원칙으로 정했다. 성균관대는 온라인 시험을 진행하면서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응시생 신분과 시험과정을 감독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은 시험방식을 교수 재량에 맡겨 공정성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교수들 사이에서는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한 1대1 구술시험 △과제물 대체 △함께 풀거나 책 보고 베낄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문제 출제 등 각종 방안이 제안되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부정행위 방지책도 필요하지만, 최소한 교육자가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의 부정행위를 가정하고 시험 출제를 할 순 없지 않느냐”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한국 상아탑 수준 보여준 사건
대학가의 잇단 커닝 사태가 한국대학의 수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비판도 나온다. 수십 년째 매 강의마다 오픈북 시험을 고수한다는 수도권 한 대학 교수는 “대학이 수익 창출을 위해 수백 명씩 듣는 대형 강의를 확대했고, 교수가 채점 편의를 위해 대학생까지 암기식 시험을 보게 하기 때문에 대규모 시험 부정행위도 가능했던 것”이라며 “국내 대학의 근본적 한계에서 비롯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학문의 큰 맥락을 이해하고 자기 삶과 연결해 서술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출제·채점하면, 대리시험을 볼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기본적인 이론 암기를 바탕으로 계산을 도출하는 ‘정답 있는’ 학문의 경우 온라인 커닝 가능성은 언제나 상존한다. 실제로 대규모 시험 부정 문제가 불거진 학과는 수학, 의학, 이공계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이 경우 애초 원격수업을 위해 설립된 한국방송통신대학(방송대)의 사례를 눈여겨볼만하다. 방송대는 시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4지선다형의 오프라인 객관식 시험(70~100%)과 과제물(0~30%)로 절대평가하는 방식을 고수했고, 올 여름 계절학기에 ‘문제은행식 시험’ 도입을 검토 중이다. 오프라인 시험을 실시하되 학생마다 시험 시간대를 달리하고, 문항수의 몇 배수를 미리 출제해 그중 무작위로 일부 문항을 풀게 하는 방식이다. 이호권 방송대 교수는 “미리 시험 본 학생 중 누군가 문제를 유출할 가능성도 분명 있다”면서도 “경우의 수만 따지다 보면 어떤 시도도 할 수 없어 우선 학생수가 적은 계절학기에 시범 실시하고 결과에 따라 2학기에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우선 1학기는 중간·기말고사를 모두 과제물로 대신하기로 했다. 이호권 교수는 “표절 검사 등 보완책을 실시한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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