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벨트를 가다] 가장 사랑 받는 음료, 가장 불평등한 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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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벨트를 가다] 가장 사랑 받는 음료, 가장 불평등한 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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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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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회> 커피 한 잔에 담긴 생산 농가의 땀과 눈물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 고원의 어느 농가. 풀을 섞은 흙으로 벽을 만들고, 바나나 잎 등을 엮어 지붕을 덮었다. 그들의 삶은 가난이나 빈곤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최상기씨 제공

다시 찾은 에티오피아의 이르가체페 고원. 이른 새벽 멀리서 아슴푸레 들려오는 회교사원의 확성기 소리에 잠이 깼다. 노래를 부르듯 중얼거리는 기도문은 잠자는 신을 깨우기라도 하듯 몽환적이다. 그 소리에 이끌려 게스트하우스 밖을 나왔다. 해발 2,000m 높이의 새벽 공기는 적도에서 가까운 열대라 하더라도 한기를 느낄 만큼 차다.

밖은 희뿌옇게 동이 터오고 있었지만, 자욱한 새벽안개가 세상을 뒤덮고 있어 몇 걸음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음습한 냄새. 후추향이 느껴지는 듯도 하고, 어디선가 무언가를 태우면서 나는 연기 냄새 같기도 하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새벽 공기. 흙과 풀, 짙은 숲 속에서 나는 이 거친 원시의 냄새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무작정 골목길을 따라가본다. 회교사원의 기도소리도 끊어지자 사위는 정적에 묻힌다. 가끔씩 어디선가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만 들릴 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누군가 뒤를 따라오는 듯하여 돌아보니 비비라고도 불리는 개코원숭이 무리들이다. 민가가 있는 마을에서 야생 동물을 만나기는 쉽지 않지만, 가끔씩 마주치는 원숭이는 이곳이 아프리카 대륙임을 상기시킨다.

좁은 골목길은 숲 속으로 이어진다. 이쯤에서 돌아갈까 생각하던 때 커피나무의 붉은 체리가 눈에 들어온다. 커피 열매가 붉은 것은 커피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피눈물이 맺혀서 그렇다는 어느 농부의 섬뜩한 말이 떠오른다. 여기부터 농장이라는 안내판도, 울타리도, 경계석도 없다. 그저 바나나 나무와 잡풀들이 우거진 사이로 커피나무가 군데군데 자라고 있을 뿐이다. 인간이 그 열매를 따서 음료로 즐기기 훨씬 전인 수십, 수백만년 전부터 커피는 에티오피아 고원의 생명 주기, 자연의 질서 속에 살아왔다. 지금도 이 고원에서는 자연교배를 통해 수천가지 변종 커피들이 흙과 물, 햇볕, 공기, 벌과 나비, 미생물들, 이름 모를 풀과 나무들, 그리고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커피 농가 사람들의 양육 속에서 자라고 있다.

어떤 힘에 끌리듯 숲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수확을 앞둔 커피 열매는 짙은 안개 속에서도 쉽게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숲인지, 커피 밭인지 모를 수풀을 헤치고 가다가 문득 어느 농가를 발견했다. 풀을 섞은 흙으로 이겨 만든 벽과, 바나나 잎으로 덮은 지붕. 가난이나 빈곤이라는 단어조차 적당하지 않는 열악한 삶의 터전. 아마도 이 농가의 주인과 어린 아이들은 커피를 따고 햇볕에 말려 번 돈으로 양식을 사고 학교에 다닐 것이다. 수입이 낮아 당장 눈 앞의 생계를 이어갈 걱정으로 가득할 지도 모른다. 이르가체페 고원에서 가난과 커피는 결코 이분화시킬 수 없는 등식이다.

이르가체페 뿐 아니라 커피가 재배되는 지역은 대부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커피 생산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나라라면 십중팔구 극빈국이다. 브룬디, 르완다, 에티오피아처럼 커피가 수위를 다투는 수출 품목인 나라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커피 수요 증가를 초과하는 공급량은 수 십년간 국제 커피 가격을 압박해왔다. 지난 40년 동안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8배 성장하는 동안 국제 커피 시세는 절반 가량으로 떨어진 것 만으로도 커피 농가와 생산국의 어려움은 짐작 가능하다.

높은 생산성을 갖춘 대규모 농장들과, 메이저 글로벌 곡물회사, 선진국의 커피 대기업들의 구매력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하면서 안정적인 가격의 커피 공급을 가능케 했다. 그리고 이런 수요중심의 효율적이면서 냉정한 거래 관행과 시스템은 커피 농가들의 생계를 짓눌러 왔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자유 무역 체계는 전 세계 경제를 발전시키고 많은 지구인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었지만, 커피 생산국과 가난한 커피 농가들은 이 거대한 질서의 큰 피해자다. 커피는 지구상에서 가장 불평등한 작물이기 때문이다.

이르가체페의 한 커피 농장에서 마을 주민들이 손으로 결함 있는 커피를 고르고 있다. 소비지 식료품점에서 판매되는 볶은 커피 한 봉지에는 이들의 고된 노동과 정성이 담겨있다. 최상기씨 제공

다시 서울. 창 밖으로 고궁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고즈넉한 한옥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나지막이 들리는 클래식 선율과 전통 문양의 수가 놓인 푹신한 방석, 고재를 재활용해서 만든 테이블까지 커피를 즐기기 위한 완벽한 환경이 갖춰져 있다. 실내의 대기 입자들은 오로지 스피커에서 나는 음파에 흔들리며 부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조만간 고요함을 깨고 원두가 갈아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강한 휘발성의 커피 향기가 전해진다. 꽃 향인 듯 하더니 과일 향도 느껴지고, 허브 향 같기도 하다. 향기만으로도 조금 전에 주문한 에티오피아 게데브 내추럴이 준비되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 이르가체페 커피 산지의 가장 아래 지역인 게데브 카운티에서 생산되는 강렬한 효소의 향기를 갖고 있는 황홀한 커피다. 이 커피에서 뿜어져 나오는 휘발성의 향내는 다른 어느 커피도 추종할 수 없다.

케이크 한 쪽과 함께 바리스타가 직접 내린 게데브가 커피 잔에 담겨 나왔다. 커피는 더할 나위 없이 그윽한 향기를 자랑한다. 오래 전부터 커피의 귀부인으로 사랑 받아 온 이르가체페 커피. 만약 에티오피아 고원에 가지 않았다면 이 황홀한 향과 맛에 도취되어 그저 자연의 선물이 전해준 달콤함에 감사했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느낌으로 이르가체페를 마시기 어렵다.

어쩌면 감미로운 커피를 마시면서 생산지의 참담한 현실을 떠올리는 것은 산지를 오가며 커피 일을 하는 사람의 숙명일지 모르겠다. 검게 일렁이는 커피 잔 안에는 그 색깔만큼 어둡고 각박한 커피 재배 농가들의 현실이 녹아 있다. 우리가 아름다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것은 커피 산지의 고달픈 노동과 빈곤, 위험, 땀과 눈물 때문이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생산지의 사람들까지 기억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생산지와 소비국의 격차가 가장 큰 작물이 커피이고, 커피는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가장 자주 대하는 음료라는 점에서 커피 산지의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마시는 커피의 이력을 따라가보면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부룬디의 커피 농가나, 절벽에 매달리다시피 커피를 수확하는 늙은 예멘 농부들, 수확한 커피를 머리에 이고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의 아낙네들, 기계가 훑고 지나간 흙먼지 속에서 커피열매를 뒤지는 브라질 이민자의 후손들, 어두컴컴한 창고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결점 있는 커피와 이물질을 손으로 골라내는 우간다의 여인들, 온종일 70㎏에 달하는 커피자루를 등짐으로 나르는 콜롬비아 수출항의 부두 노동자들, 그리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건조대 아래로 떨어진 커피 열매를 줍는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 고원의 어린 아이들과 만나게 된다.

그들은 자기 손으로 딴 커피가 얼마나 향기로운 지 모른다. 한줌의 커피 체리가 누군가에게 생활의 활력이 되고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 지 잘 모른다. 반대로 커피를 마시는 우리는 산지의 사람들이 어떻게 커피를 재배하는지 잘 모른다. 식료품점에서 판매되는 저렴한 원두 한 봉지의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과 자원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른다. 커피에는 전 세계 1억명이 넘는 커피농가 사람들의 가난과 눈물이 녹아 있음을 도시의 소비자들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한 잔의 커피를 사이에 두고 지구인의 삶은 이렇게 다르지만, 그 한 잔의 커피로 두 다른 삶은 연결되어 있다.

지구는 평평하지 않다. 지구는 둥글다. 그래서 지구 반대편의 사람은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현실은 기억되지 못한다. 하지만, 지구 저편에서 보내온 커피를 마시면서 가끔씩 이 향기로운 커피를 생산해 준 사람들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아주 가끔은 그들의 땀과 눈물에 마음으로부터 감사함을 느껴도 좋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누구인지 모호하더라도 말이다.

최상기 커피프로페서

*[커피벨트를 가다] 연재는 30회를 마지막으로 끝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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