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국회의장도 이 방에서는 커피를 직접 내려 마셔야 합니다.”
‘여성 비서’가 다과를 전담하는 건 국회의 여전한 적폐다. 박수영(부산 남갑ㆍ초선) 미래통합당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엔 ‘커피 타는 직원’이 없다. 박 의원은 사무실 한 쪽에 ‘셀프 탕비 공간’을 만들었다. 벽에 ‘박수영 의원실은 차와 커피가 셀프입니다’라는 문구를 붙이고, 캡슐 커피머신을 들여놨다. 박 의원은 2일 “일하기 위해 국회에 들어온 사람들이 커피를 타고 있으면 안 될 일”이라며 “나도, 방문객도 예외는 없다”고 했다.
국회 의원회관은 갑질의 서식지다. 의원을 ‘모시는’ 문화가 여전하다. 21대 국회 들어 ‘탈권위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중심엔 전체 의원 300명 중 151명에 달하는 초선 의원이 있다.
카카오뱅크 대표 출신인 이용우(경기 고양정ㆍ초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직함을 떼고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는 정보기술(IT) 업계 문화를 의원실에 이식했다. 극존칭이나 경어체도 금지했다. 그의 별명은 ‘얀(Yan)’. 9급 비서가 스스럼없이 이 의원에게 묻는다. “얀, 밥 먹었어요?” 국회 보좌관 출신인 김병욱(경북 포항남ㆍ울릉ㆍ초선) 통합당 의원실에서도 영어 별명을 호칭으로 쓰기로 했다. 조정훈(비례대표ㆍ초선) 시대전환 의원실에선 직함은 빼고 이름 뒤에 ‘님’만 붙여 부른다. “정훈님, 본회의 참석할 시간입니다.”
업무 방식도 바뀌고 있다. 장혜영(비례ㆍ초선) 정의당 의원실은 스타트업, IT 기업에서 주로 쓰는 협업 특화 메신저 ‘슬랙(Slack)’을 사용한다. 장 의원실 관계자는 “퇴근 시간이 지나면 메신저가 저절로 ‘방해 금지 모드’로 설정된다”며 “직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다”고 반겼다.
이용(비례ㆍ초선) 통합당 의원은 사무실에 6인용 원탁 테이블을 들였다. 소파는 구석으로 밀어 놨다. 그는 보좌진과 원탁에 둘러 앉아 ‘맨투맨 의정활동 과외’를 받는다. 의원과의 맞담배도 금기로 불리는 통합당에선 이질적 장면이다. 이 의원은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동등한 입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의원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보좌진의 급수별 위계를 흩뜨리기도 한다. 한무경(비례ㆍ초선) 통합당 의원의 방인 822호 문을 열고 들어가면 4급 보좌관 2명의 책상부터 마주친다. 입구는 보통 인턴비서, 6~9급 비서ㆍ비서관의 자리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직함에 구애 받지 않고 효율적으로 일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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