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나 신부에게 평신도나 행정직원이 마스크를 쓰라고 지시할 수 있을까요? 반대로 성직자가 성전의 살림살이까지 신경 쓸 수 있을까요? 정부는 공동체마다 방역관리자를 지정하라지만 현장에는 법적 뒷받침이 없는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서울의 한 성당 관리자)
공동체마다 방역관리자를 지정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활동을 맡기는 ‘생활 속 거리두기를 위한 집단방역 핵심수칙’이 소모임이나 소규모 단체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사적 관계로 얽힌 집단에서 ‘선의의 악역’을 지정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위험도 평가 등 비전문가가 따르기 어려운 지침도 있다. 종교단체 등 공적 행정체계가 마련된 소규모 단체에서는 방역관리자를 지정해도 권한과 책임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어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방역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6일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방역체계를 전환하면서 공개한 집단방역 핵심수칙은 공동체마다 방역관리자를 지정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방역관리자는 공동체의 감염 위험도를 평가하는 한편, 구성원을 주기적으로 교육하고 방역지침 준수에 문제가 있으면 공동체에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또 동일한 부서나 장소에서 2, 3명 이상의 유증상자가 3, 4일 안에 발생할 경우 검사를 받도록 안내하고, 유증상자가 더 늘어나면 보건소에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방역당국은 지난달부터 이달 1일까지 환자 79명의 집단감염 사례가 보고된 종교관련 소모임 6건 가운데 방역관리자를 선정한 모임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잠정 판단했다. 방역관리자가 전문가처럼 행동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유증상자를 발견하면 관계기관에 알리는 ‘조기경보기’ 역할을 바란 방역당국의 기대는 이상적 계획에 그친 상황이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은 “방역수칙을 지키는지 점검하고 이끌어주는 리더 역할을 하는 사람을 지정해달라는 권고였다”면서 “방역관리자가 시설이나 모임의 위험도를 평가하고 수칙을 점검해 나가기 위한 행동요령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이 나와 현재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에서 세부 지침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손 반장은 “자율지침이라도 다중이용시설에 대해서는 각 부처와 지자체가 지속적으로 상황을 점검하고 행정지도해 지침을 지키도록 노력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종교단체 등의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방역관리자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활동을 강제할 법적 근거가 모호해 지침을 세분화해도 실천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자가 5,000명이 넘는 서울의 한 성당의 관리자는 “출입명부를 작성하는 한편, 8인용 좌석에 3명을 앉히고 열화상카메라와 체온계를 통한 발열감시 등 기본적인 지침은 철저히 따르고 있다”면서도 “이대로는 불안한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방역관리자의 권한과 책임이 불분명해 방역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기가 힘들다는 설명이다. 시설관리 업무를 맡지 않는 사제나, 부사제, 평신도회장이 방역관리자를 맡는 성당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도 뒤따랐다. 종교시설은 사제를 중심으로 운영되지만 시설 밖에서 이뤄지는 소모임은 누가 관리해야 하는지 불분명하다. 이 관리자는 정부나 서울시의 지도를 받은 적이 없다면서 “종교단체 방역이 중요하다면 방역관리자를 보건소에 신고하는 한편, 이들에게 정확히 어떤 권한이 있는지 정부가 알려줘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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