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오! 베트남] 55년 걸린 지뢰 제거… 그 땅엔‘희망의 고무나무’가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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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오! 베트남] 55년 걸린 지뢰 제거… 그 땅엔‘희망의 고무나무’가 자라고 있다

입력
2020.06.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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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베트남전 지뢰와 한국

※국내 일간치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저작권 한국일보] 베트남 국방부 소속 군인이 지난달 26일 꽝빈성 동허이시 외곽 지역에서 지뢰탐지기를 시범 작동하고 있다. 동허이=정재호 특파원

오전 10시를 겨우 넘겼을 뿐인데, 베트남 중부 꽝빈성 동허이시 외곽의 수은주는 벌써 3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베트남 국방부 산하 국가지뢰센터(VNMAC) 소속 군인 30여명은 이런 더위쯤은 익숙한 듯 지뢰탐지기를 들고 작전 지역에 성큼성큼 들어섰다. 곧 할당 구역에 도착하자 5명씩 팀을 이뤄 탐지 작업을 시작했다. 10m씩 간격을 두고 신중히 발걸음을 내딛던 순간, 탐지기에서 ‘삐삑’ 경보 소리가 울렸다. 이어 빨간색 깃발이 달린 나무 막대기들이 경고음 주변에 꽂혔고 군인들은 다시 느리게 이동을 시작했다.

팀당 50㎡ 정사각형 모양의 작업 구역(cell) 탐지를 끝내는 데 걸린 시간은 40여분. 각 팀장이 이날 하루 발견한 지뢰 개수 등을 현장 본부에 보고 나서야 업무가 종료됐다. 지난달 26일 꽝빈성의 지뢰 탐지 작업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VNMAC 관계자는 “이 정도 속도면 지뢰 제거도 내년이면 다 끝날 것 같다”고 담담히 말했다. 1965년 10월 한국 청룡부대가 꽝빈성이 있는 중부지역에 처음 파병돼 미 해병대와 함께 지뢰를 매설한지 55년이 지나서야 베트남은 서서히 ‘전쟁 악몽’에서 벗어나고 있다.

지뢰 사라진 자리엔 고무나무가 쑥쑥

[저작권 한국일보] 지뢰가 제거된 베트남 중부 꽝빈성 동허이시 외곽 지역에 고무나무가 심어져 있다. 전쟁 악몽에서 벗어난 동허이는 생명의 땅으로 거듭나고 있다. 동허이=정재호 특파원

꽝빈성은 베트남전 당시 북베트남군이 남베트남을 공격하기 위해 개척한 이른바 ‘호찌민 루트’가 관통하던 전략 거점이었다. 한국의 38선과 같은 북위 17도선 인근에 위치해 격렬한 전투가 수십 차례 벌어진 지역이기도 하다. 전쟁은 상흔을 남겼다. 151개 면(코뮨) 전체가 지뢰 및 불발탄 오염 지역으로 파악될 만큼 꽝빈성의 피해는 엄청났다. 찡띵쯔엉 꽝빈성 사회지원과 차장은 “전쟁 기간인 1964년부터 1975년까지 성 내에서 지뢰ㆍ불발탄 피해로만 3만여명이 사망했다”며 “종전 후에도 최근까지 3,000여명이 지뢰 사고로 숨질 정도로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베트남 지뢰 탐지 제거 현황.

반세기 넘게 아픔이 이어진 것은 베트남 측이 지뢰 제거 사업을 국제인권기구 등에 기댄 한시적 활동에만 의존했기 때문이다. 면밀한 중장기 계획 없이 도움의 손길이 올 때마다 시급한 곳의 지뢰만 없애는 땜질식 해법에 급급했다는 얘기다. 피해가 반복되자 베트남 정부는 결단을 내렸다. 2014년 10월 당 서기장 등이 한국을 찾아 지원을 공식 요청한 것. 한국 정부도 역사적 화해의 필요성에 크게 공감, 2016년 ‘한ㆍ베트남 지뢰 행동 계획(KVMAP)’을 발족했다. 사업을 주관한 한국국제협력단(KOICAㆍ코이카)은 이후 지뢰 제거 경험이 많은 유엔개발계획(UNDP)에 실무를 맡겼고, 2018년 9월부터 현지 탐지ㆍ제거 작업에 돌입했다.

KVMAP는 지뢰를 없애는 일에만 몰두하지 않는다. 복구 지역의 회복과 재생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다. VNMAC은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빈딘성을 포함해 축구장 3만1,410개 크기인 총 1만7,742㏊를 탐지했으며, 이 중 4분의1 면적(4,340㏊)에서 제거 작업을 완료했다. 관련 기록은 베트남 국가통합정보관리시스템에 차곡차곡 쌓였다.

이제 살인 무기가 사라진 땅에는 생명이 움트고 있다. 주민들이 원하는 고무나무 공동농장이나 축산 클러스터 등이 들어서 새로운 경제활동 터전으로 변신 중이다. 베트남은 토지 소유권이 국가에 귀속된 사회주의 나라이지만, 지뢰 회복 지대만큼은 지방정부가 일방적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한ㆍ베트남 정부가 미리 합의했다.

그래도 고통은 계속된다

[저작권 한국일보] 베트남전 당시 매설된 지뢰로 왼팔과 눈을 잃은 트링딩테우씨가 지난달 26일 의수를 이용해 나무를 다듬고 있다. 동허이=정재호 특파원

베트남전 기간 설치ㆍ투하된 폭탄의 양은 100만톤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중 상당수가 최대 격전지였던 꽝빈성 등 중부지역에 집중돼 이 지역은 토지뿐 아니라 강도 사실상 지뢰밭과 다름없는 실정이다. 실제 최근 10년 사이 확인된 피해는 대부분 홍수 시기에 범람한 강물과 함께 떠내려 온 지뢰가 인접 마을로 유실되면서 발생했다.

2013년 홍수 사태 때 지뢰를 만져 왼팔과 눈을 잃은 트링딩테우(52)씨는 지금도 강만 쳐다보면 두려움이 앞선다. 지난달 26일 꽝빈성 꽝손면 바동 마을에서 만난 테우씨는 “마을 앞 강 깊은 곳에는 여전히 수많은 지뢰가 도사리고 있다”면서 “마을 사람들이 강가에서 고철인 줄 알고 지뢰를 만지는 일이 빈번해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코이카와 UNDP는 이런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현지 교육 강화에 힘쓰고 있다. 마을 면장과 지방정부 관계자, 교사 등을 모아 지뢰위험교육(MRE)을 진행한 뒤 이들을 현장에 보내 정보를 제공하는 식이다. 지금까지 1만여명이 교육을 이수해 학교 122곳과 220개 면에서 매달 MRE가 실시됐다. 덕분에 지뢰 위험성을 인지한 주민은 13만여명에 달한다. 조한덕 베트남 코이카 소장은 “지뢰 피해는 전쟁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해결 과제”라며 “교육을 좀 더 효율적으로 진행하면서 강 등에 남아 있는 위험 요소도 꼼꼼히 파악하겠다”고 강조했다.

꽝빈성 등의 지뢰 제거 작업은 내년 하반기까지 이어진다. 코이카와 UNDP는 사업 결과를 최종 확인한 후 2차 지뢰제거 작업 개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꽝빈성 고위 관계자는 “한국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는 사실보다 오늘날 한국이 전쟁 피해 복구를 함께 한다는 점이 우리에겐 더 중요하다”며 “지뢰가 전부 없어지는 날, 두 나라는 다음 단계의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달 26일 베트남 북위 17도선 기념탑 중앙에 꽂힌 베트남 국기가 석양을 배경으로 나부끼고 있다. 동허이=정재호 특파원

동허이=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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