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간 실적 부진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 한국 조선업계에 모처럼 낭보가 전해졌다. 대규모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카타르가 100척 이상의 LNG 운반선을 한국 조선 ‘빅3’에 발주하면서다. 계약 규모는 당초 알려진 18조원 규모를 상회하는 23조6,000억원(700억 리얄)으로, LNG 운반선 계약으로는 사상 최대다.
카타르 국영석유사인 카타르 페트롤리엄(QP)은 1일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 3사와 2027년까지 100척 이상의 LNG 운반선 건조를 위한 ‘카타르 LNG 운반선 슬롯예약계약 거래조건협정서(MOA) 서명식’을 온라인 화상 연결로 진행했다.
LNG 운반선 사상 최대라는 23조6,000억원 규모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2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QP의 요구에 따라 각 사별로 구체적인 수주 금액은 공개할 수 없다. 회사마다 전략과 선박 건조 공간인 슬롯 현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조선업계의 설명이다.
산술적으로 각 사가 30여척씩 나눠서 수주한다고 가정할 때 23조6,000억원의 3분의 1가량인 7조~8조원을 수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2027년까지 공급하는 계약이고 LNG선 1척을 건조하는데 2년 이상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발주는 2024년까지 나눠서 이뤄질 것”이라며 “각 사별로는 올해부터 2024년까지 연간 약 1조5,000억원 수준의 물량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회사별 LNG선 수주 목표의 절반에 해당한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최근 조선업계는 수주 절벽 때문에 고심이 깊었다.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3월말 기준 국내 조선사들의 수주 잔량은 2,118만 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로 지난해 전 세계 1년 발주량인 2,529만CGT와 비슷한 수준이다. 국내 조선 3사의 수주잔량이 연간 발주량과 맞먹는다는 건, 그만큼 발주 자체가 말라버렸다는 뜻이다.
게다가 올해 초 선박 발주 대부분이 중국에서 이뤄지면서 중국 선사들이 수주를 독식, 한국 조선업은 중국에 수주 세계 1위를 내줘야만 했다. 심지어 3조5,000억원 규모인 QP의 첫 LNG선 물량을 중국선박공업(CSSC)의 후동중화조선에 내주면서 LNG선 시장마저 중국에 잠식당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마저 감돌았다.
하지만 이번 초대형 수주를 계기로 한국 조선업이 반등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 등으로 글로벌 LNG 수요가 증가하면서 카타르 외에도 러시아, 모잠비크,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신규 LNG선을 개발, LNG선 발주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LNG선 건조 기술에서는 한국 조선업계가 독보적인 만큼 연내 추가 계약 소식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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