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부캐와 N잡러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36.5] 부캐와 N잡러

입력
2020.06.02 04:30
0 0
※36.5℃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둘째이모 김다비 (김신영) '주라주라' 앨범 표지 / 미디어랩 시소 제공/2020-05-19(한국스포츠경제)

‘부캐’를 아십니까. 부캐는 한자 ‘부(副)’와 ‘캐릭터’의 앞자를 합쳐 만든 말로, 두번째 캐릭터를 뜻한다. 원래 온라인 게임에서 사용됐던 용어다. 자신이 가진 게임 캐릭터를 ‘본(本)캐’로 하고 그 외 다른 캐릭터를 생성해서 게임 할 때 ‘부캐’로 구분했다.

최근 부캐라는 용어가 주목 받는 건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이 촉발한 측면이 크다. 그는 방송에서 끊임없이 부캐를 생성하고 있다.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 드러머 ‘유고스타’(유재석+링고 스타), 라면 요리사 ‘라섹’(라면 끓이는 섹시한 남자), 하피스트 ‘유르페우스’(유재석+오르페우스) 등이 유재석의 ‘부캐’다.

개그우먼 김신영은 아예 본캐는 잠시 두고 부캐로 활동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가 만든 부캐는 ‘둘째이모 김다비’인데, 캐릭터 설정이 구체적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많을 다(多), 비 비(?)를 써 비가 많이 오는 날 태어났다는 뜻의 빠른 1945년생 신인 트로트 가수가 김다비다. 직장인의 애환을 직설적으로 대변하며 풀어낸 노래 가사나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천연덕스럽게 부캐로 인터뷰에 응하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부캐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연예인들의 부캐를 알지만 속아주며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직접 부캐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한다. 서울대 소비 트렌드 분석센터가 책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 밝힌 올해의 키워드 중 하나가 ‘멀티 페르소나’다. 직장에서와 퇴근 후의 정체성이 다르고, 일상에서와 SNS상 정체성이 다르듯, 현대인들이 다양하게 분리되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사실 일반인들 사이에서 ‘부캐’라는 용어는 유쾌한 놀이보다는 좀 더 고단한 현실과 닿아 있다. 대기업 직장인들조차 밤에 배민커넥트나 쿠팡플렉스를 통해 배달을 부업으로 갖는 경우가 많다. 유튜브 채널이나 온라인 쇼핑몰, 에어비앤비 운영 등을 통한 또 다른 수익 창출 활동을 설명할 때에도 부캐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그만큼 현대인들은 본캐만으론 살아가기 힘든, 제2, 제3의 부캐를 가져야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본캐, 부캐 등 직업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N잡러’라고 부른다. 여러 수를 의미하는 ‘N’과 ‘잡’(job), ‘~하는 사람’이라는 영어 표현 ‘er’이 한데 붙은 신조어다. 유재석이 현실에 있다면 하프연주자부터 라면요리사까지 해내는 전형적인 N잡러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저녁에는 플랫폼 노동을 하는 N잡러를 우리 주변에선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언택트 소비 증가로 온라인 쇼핑몰 물류센터 단기고용 노동자도 급증했다. 그러나 실은 대부분 2, 3개 이상의 직업을 갖고 있는 N잡러라고 한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한 30대 여성은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면서 인근 초등학교에서도 돌봄 지원 인력으로 단기 근무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부천 뷔페식당 코로나 확산 최초 전파자도 주중에는 택시기사로 일하고, 주말에는 프리랜서 사진사로 돌잔치 행사를 뛴 것으로 알려졌다.

주52시간 근무제 시행과 정보기술(IT) 발전에 힘입어 추가 수익 창출 활동에 나서는 N잡러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자의든 타의든 N잡러가 되는 사람들도 폭증하고 있다. 부캐를 앞세운 예능프로그램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를 마냥 예능프로그램처럼 보고 웃어 넘길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플랫폼 노동 확대에 따른 법과 제도의 손질, 저임금 단기 노동자 증가에 따른 사회안전망 마련 등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강희경 영상팀장 kstar@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36.5˚C
한국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네이버엣도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스탠드에서 구독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