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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쓰는 다산 차남… 흑산도 기행문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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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쓰는 다산 차남… 흑산도 기행문 발견됐다

입력
2020.06.0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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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학유의 흑산도 기행문 '부해기'. 연합뉴스(정민 한양대 교수 제공)
정학유의 흑산도 기행문 '부해기'. 연합뉴스(정민 한양대 교수 제공)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차남인 정학유(丁學游ㆍ1786∼1855)의 흑산도 기행문이 발견됐다. 지금껏 별로 알려지지 않은 그의 문학적 재능이 잘 드러나 있는 글이다. 다산학 연구에도 도움이 될 만한 자료라는 게 학계 평가다.

1일 학계에 따르면 최근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다산 집안이 보관하고 있는 ‘유고’(遺稿) 10책 중 8~10책에 수록된 정학유의 문집 ‘운포유고’(耘圃遺稿)에서 기행문 ‘부해기’(浮海記)를 확인했다. 일기 형식의 이 글에는 정학유가 부친 당부로 유배 중이던 둘째 큰아버지 정약전(丁若銓)을 만나러 흑산도에 다녀온 1809년 2월 3일부터 3월 24일까지 52일간의 여정이 기록됐다. 당시 선박 운항 방식과 흑산도의 풍경과 특산물, 풍속과 주민 생활, 중국 표류선에 대한 증언, 무리 지어 몰려다니는 개 이야기 등 다채로운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묘사가 빼어나다. 가령 전남 신안 흑산도가 멀리 보이는 교맥섬(흑산면에 있는 무인도) 인근에서 고래를 목격하고 쓴 다음 같은 대목이다.

“고래 다섯 마리가 나와 노닐며 멀리서 거슬러 왔다. 그 중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물을 뿜는데, 그 형세가 마치 흰 무지개 같고, 높이는 백 길 남짓이었다. 처음 입에서 물을 뿜자 물기둥이 하늘 끝까지 떠받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도리어 옥 같은 눈이 땅 위로 떨어졌다. 햇빛에 반사돼 비치자 광채가 현란하였으니, 참으로 기이한 광경이었다.”(1809년 2월 12일자)

정학유가 흑산도에 간 건 아버지의 주문 때문이었다. 정약전의 아들 학초(學樵)가 1807년 17세에 세상을 떠나자 다산은 유배지에서 절망한 형을 위해 1808년 봄 강진에 온 둘째 아들을 이듬해 흑산도로 보냈다.

부해기에 따르면 1809년 2월 3일 강진을 출발한 정학유는 영암 도씨포(현 도포리)에서 배를 타고 정개도와 목포보(목포 만호동에 있던 수군 진영), 고하도, 팔금도, 비금도를 거쳐 흑산도에 도착했다. 이후 정약전과 만나 공부를 점검 받고 너럭바위와 소라굴 등 여러 승경을 유람한 뒤 정약전의 생일 잔치까지 치르고 강진으로 돌아왔다.

정학유는 형 학연(學淵)과 함께 다산의 ‘주역심전’(周易心箋)을 정리, 완성하는 등 다산의 학문 활동을 도운 인물이다. 농가에서 매달 할 일과 풍속 등을 한글로 읊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를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해지는 글이 많지 않아 그간 그의 됨됨이나 문학세계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부해기는 이런 공백을 메워줄 뿐 아니라 정약전의 흑산도 유배 생활, 흑산도의 숨은 절경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나아가 다산학 연구에도 상당히 기여할 자료로 평가된다.

정 교수는 다산과 정약전 사이에 오간 서간문을 번역해 이번에 확인한 자료와 함께 책으로 엮어 출간할 예정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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