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달랬더니 ‘노인이 얼마나 더 살려고’”…우리의 노동을 말합니다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마스크 달랬더니 ‘노인이 얼마나 더 살려고’”…우리의 노동을 말합니다

입력
2020.06.01 06:00
0 0
[임계장 이야기’를 쓴 조정진씨. 노인 비정규 노동의 실태를 기록한 책은 두 달 만에 1만부가 팔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입사 첫날, 나는 별 생각 없이 미세먼지 마스크를 지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직원이 멀뚱히 나를 쳐다보더니 돌아섰다. 등 뒤로 혼잣말이 들렸다. “염병…다 늙은 경비가 얼마나 오래 살고 싶어서”(‘임계장 이야기’ 236쪽)

조정진씨는 38년간 공기업 정규직으로 일하다 2016년 퇴사한 뒤 비정규직 노동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버스 회사 배차 계장, 아파트 경비원, 빌딩 주차관리원 겸 경비원, 버스터미널 보안요원으로 일했고, 지금도 주상복합건물의 경비원 겸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으로 일하며 기록한 노동일기는 ‘임계장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여 노인 비정규 노동의 실태를 알렸다. 그 어떤 과장도 미화도 없이 생생한 노동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에 독자들은 감응했고, 지난 3월 출간된 책은 두 달 만에 1만부가 팔렸다.

조정진씨가 쓴 책 '임계장 이야기'(후마니타스)와 조씨가 꺼내 보여준, 일하는 틈틈이 그간의 노동을 기록한 메모장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나의 노동을 글로 기록하고 출판해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권리는 소수에게나 허락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글쓰기 장벽은 낮아졌고, 낮아진 장벽을 타고 넘어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노동을 직접 전하는 ‘노동자 작가’들이 늘고 있다. 전태일 열사 50주년이 되는 올해, 최근 출간된 책 중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의 자리를 밝히는 책들을 모아봤다.

◇당신이 떠난 자리를 대신 청소합니다

죽은 사람은 자신의 떠난 자리를 스스로 정리할 수 없다. 특수청소부는 그 일을 대신해주는 사람이다. 이사 후 남겨진 폐기물 처리, 각종 범죄현장 청소, 무엇보다 사람이 사망한 현장을 정리, 처리, 폐기, 소독하는 일을 한다. 김완의 ‘죽은 자의 집 청소’(김영사)는 특수청소업체를 운영하는 저자가 일하며 마주친 현장을 담았다. 특수청소부라는 낯선 직업에 대한 이해와 함께 고독사를 비롯한 다양한 죽음의 모습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만든다.

◇백의의 천사이기 전에, 저희도 사람입니다

세상은 간호사를 ‘백의의 천사’라고 부르지만, 간호사는 생의 최전방에서 사투하는 전사에 가깝다. 이라윤의 ‘무너지지 말고 무뎌지지도 말고’(문학동네)는 대학병원 중환자실 5년차 간호사인 저자가 여러 상황을 겪으며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태움(‘재가 될 때까지 괴롭힌다’는 뜻의 병원 내 괴롭힘) 문화와 병원의 지나친 서비스업화, 의사와의 갈등 등 간호업계의 민감한 문제를 비롯해, 사명감과 보람만 있는 간호사가 아닌 치열한 노동현장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노동자로서의 간호사를 그려낸다.

◇도서관이라는 작은 사회를 통해 본 노동 현실

지난해 서울지역 기준 공공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 노동자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다. 석정연의 ‘저는 비정규직 초단시간 근로자입니다’(산지니)는 초등학교 계약직 사서로 근무한 저자가 6년간 경험한 도서관 노동 현장을 기록한 에세이다.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되고, 아이를 키우며 일하기 위해선 초단시간 비정규 노동 현장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저자의 경험에서, 오늘날 한국사회의 많은 경력 단절 여성이 처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오늘도 땀 흘려 일한 세상 모든 일개미들 이야기

‘땀 흘리는 글’(창비교육)은 일과 노동을 테마로 한 생활글 선집이다. 작사가 김이나,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 요리사 박찬일, 작가 김동식 등 유명 저자들의 본격 일 얘기부터, 콜센터 직원, 패스트푸드 배달원, 요양 보호사 등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고민까지 총 24편의 일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각자 직업도 처한 상황도 다르지만 고민과 보람의 모습은 엇비슷하다는 점에서, 땀 흘려 일하는 세상의 모든 일개미들에게 위안을 주는 책이다.

◇50여년이 지났어도 여전한 그 시절 노동자의 울림

1970년대 초반 인천 부평의 외국인투자기업 삼원섬유의 노동 착취에 맞서 노조를 결성하고 지켜내는 과정을 기록한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철수와영희)은 오랫동안 노동자문학의 고전으로 불려왔다. 1978년 처음 출간된 후 판금조치와 절판을 거듭했던 책이, 올해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새롭게 출간됐다. 50여년 전의 얘기지만 책에 실린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은 어떤 면에서는 그대로이기에,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의 모습은 여전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한국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네이버엣도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스탠드에서 구독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