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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의 굿모닝 2020s]"삶에서 연속적인 절망은 없다" 긍정적 태도 강조한 행복전도사

입력
2020.06.02 04:30
수정
2020.06.02 17:08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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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조지 베일런트의 ‘행복론’

미국 정신과 의사인 조지 베일런트가 2014년 TEDx 암스테르담에서 강연하고 있다. ‘행복의 조건’, ‘행복의 비밀’ 등 유명한 책들을 쓴 그의 행복론은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긍정의 심리학이다. 위키미디어 공용
미국 정신과 의사인 조지 베일런트가 2014년 TEDx 암스테르담에서 강연하고 있다. ‘행복의 조건’, ‘행복의 비밀’ 등 유명한 책들을 쓴 그의 행복론은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긍정의 심리학이다. 위키미디어 공용

행복이란 뭘까. 국어사전에 따르면 행복이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상태를 뜻한다. 아리스토텔레스 방식으로 말하면 ‘최상의 좋음’, 다시 말해 ‘최고선’이 행복이다. 그런데 사람마다 이 최고선은 다르다. 우리 시대에 인류가 합의할 수 있는 행복이란 과연 있는 걸까. 존재한다면 어떤 모습을 보이는 걸까.

◇베일런트가 제시하는 행복의 조건

서구사회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행복의 담론은 차고 넘쳤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을 위시한 저작들은 베스트셀러를 기록해 왔다. 러셀은 인간과 사물에 대한 따듯한 관심이 행복의 근원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자기 내면이 아니라 외부 세계에 대한 폭넓은 사랑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오늘 다루려는 이는 미국 정신과 의사인 조지 베일런트다. 베일런트를 주목하는 까닭은 세 가지다. 첫째, 그는 행복의 전도사다. ‘성공적 삶의 심리학’ ‘행복의 지도’ ‘행복의 조건’ ‘행복의 완성’ ‘행복의 비밀’의 저자다. 둘째, 그의 행복론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한 실제적 연구에 기반한다. 그만큼 객관성과 타당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행복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베일런트는 행복의 조건 중 하나로 금연을 꼽는다. 오십을 넘은 사람이 흡연을 하고 있을 경우 그가 행복해질 가능성이 다른 이들에 비해 높지 않다는 베일런트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그의 분석이 기반하는 자료는 미국 하버드대 ‘성인발달 연구’다. 이 연구는 성인남녀 814명의 삶을 1938년부터 70여년간 추적 조사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세 집단을 조사 대상으로 한다. 하버드대 졸업생 268명, 보스턴에 거주하는 청소년 456명, 터먼 연구에서 추린 천재 아동 출신 여성 90명이 그들이다.

이 가운데 베일런트가 크게 의존하는 것은 하버드대 졸업생 표본이다. 기부자의 이름을 따와 ‘그랜트 연구’라고도 불린다. 연구 대상자들의 정신건강과 삶을 주목한 이러한 전향적 종단 연구는 한 개인에게 과거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생히 분석할 수 있는 강점을 가진다.

이 연구에서 그가 사용한 분석적 도구는 정신분석학자 안나 프로이트가 주조한 개념인 ‘방어기제’다. 방어기제란 일상적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본능과 양심 등이 외부 현실과 마주해 발생시키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자아가 사용하는 심리적 매커니즘을 말한다. 어떤 방어기제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한 개인의 삶은 행복해질 수도, 불행해질 수도 있다.

베일런트는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의 이론을 참조해 한 사람의 발달과정에 여섯 가지 과업들이 존재한다고 파악한다. 정체성 확립, 친밀감 발전, 직업적 안정, 생산성 과업, 의미의 수호자, 통합이 그것들이다. 이런 일련의 발달과정에서 특히 무의식적 방어기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그는 추적하고 있다.

베일런트가 행복 조건 중 하나로 꼽는 게 금연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베일런트가 행복 조건 중 하나로 꼽는 게 금연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면 베일런트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의 조건’(2002)에서 그가 말하는 행복한 삶이란 ‘성공적 노화’다. 사랑하고, 일하며, 새로운 사실을 배우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긍정적 또는 성공적 노화라고 그는 개념화한다.

흥미로운 것은 성공적 노화의 조건에 대한 베일런트의 발견이다. 그에 따르면, 조상의 수명, 콜레스테롤, 스트레스, 부모의 특성, 유년기의 성격, 사회적 유대관계는 성공적 노화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 우리가 통념으로 갖고 있는 것들에 그는 이견을 제시한다.

베일런트의 분석에서 주목할 것은 성공적 노화를 예측 가능하게 하는 일곱 가지 요인들이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성숙한 방어기제라고 그는 말한다. 이어 교육, 안정된 결혼 생활, 금연, 금주, 운동, 알맞은 체중이 뒤따른다. 이 일곱 가지의 요인들이 그가 펼쳐 보이는 행복의 구체적인 조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2020년대와 행복의 미래

‘행복의 조건’을 발표한 후 10년이 지나 그는 ‘행복의 비밀’(2012)을 다시 내놓았다. ‘행복의 비밀’에선 그랜트 연구가 안겨준 교훈을 여섯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인간에겐 도덕적·문화적 편견과 어느 정도 무관한 긍정적 정신건강이 존재한다. 둘째, 심리적 적응을 위한 인간의 대응 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셋째, 성공적 삶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랑이다. 넷째, 사람은 누구나 변할 수 있고 또 성장할 수 있다. 다섯째, 잘되고 있는 일이 잘못되는 일보다 사람의 삶에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여섯째, 전향적 종단 연구는 우리 인생사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을 준다.

이 가운데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세 번째 교훈이다. 그에 따르면, “행복은 사랑을 통해서만 온다. 더 이상은 없다.”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 대부분은 서른이 되기 전에 사랑을 알았고, 그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중요한 것은 네 번째 교훈이다. 상처를 딛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는 것이다.

‘행복의 비밀’에서 베일런트는 성공적 삶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사랑이라고 주장한다.
‘행복의 비밀’에서 베일런트는 성공적 삶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사랑이라고 주장한다.

2020년대가 열린 현재, 우리 인류는 100세 인생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베일런트의 행복론이 던지는 함의는 결코 작지 않다. 나는 세 가지를 주목하고 싶다.

첫째, 자아의 힘이다. ‘행복의 지도’의 원제목은 ‘자아의 지혜(The Wisdom of the Ego)’다. 그리고 ‘행복의 조건’의 원제목은 ‘잘 늙기(Aging Well)’이고, ‘행복의 완성’의 원제목은 ‘정신적 진화(Spiritual Evolution)’이며, ‘행복의 비밀’의 원제목은 ‘경험의 승리(Triumphs of Experience)’다. 이러한 원제목들이 함의하는 바는, 행복한 삶이란 결국 예상되거나 예기찮은 고통들에 어떤 태도나 의지를 보이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둘째, 구체성의 힘이다. 사람의 삶이란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베일런트 연구의 장점은 생생한 사례들에 있다. 그가 들려주는 구체적인 서사들로부터 작지 않은 위로와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셋째, 시간의 힘이다. 베일런트에 따르면, 삶의 후반부는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 성숙은 평생을 걸쳐 진행되는 기나긴 과정이다.

개인 못지않게 구조를 중시하는 사회학자인 내가 보기에 이러한 베일런트의 연구 결과에 모두 동의하긴 어렵다. 그가 주로 의존하는 그랜트 연구는 하버드대 졸업생이라는 특수한 대상을 다루기에 일반화에 주의해야 한다. 더하여, 행복에 이르는 데 요구되는 물질적 조건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풍요롭진 않더라도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경제적 삶은 행복의 제1의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성공적 노화에 대한 베일런트의 분석은 앞서 말했듯 100세 시대로 나아가는 우리 시대에 작지 않은 교훈을 안겨준다. 그의 행복론은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긍정의 심리학이다. 삶에서 연속적인 절망은 없다.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와 의지가 행복한 인생을 보장한다는 말이 삶의 구조적 조건을 고려할 때 절반만 참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유엔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올 3월 공개한 ‘2020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153개국 중 61번째 행복한 나라다. 한국인들이 그렇게 행복한 축에 속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코로나19 탓에 자칫 전쟁터 같던 출근길이 그리워지게 생겼다. 출근 시간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연합뉴스
유엔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올 3월 공개한 ‘2020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153개국 중 61번째 행복한 나라다. 한국인들이 그렇게 행복한 축에 속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코로나19 탓에 자칫 전쟁터 같던 출근길이 그리워지게 생겼다. 출근 시간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연합뉴스

◇한국사회와 행복의 미래

유엔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의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는 세계 153개국 가운데 61번째로 행복한 나라로 조사됐다. SDSN이 활용한 기준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사회적 지원, 건강, 기대수명, 사회적 자유, 관용, 부정부패였다. 1위를 차지한 나라는 핀란드였고, 덴마크와 스위스가 뒤를 이었다. 미국과 일본과 중국은 각각 18위, 62위, 94위를 차지했다.

객관적 지표와 주관적 의식을 모두 고려할 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상대적으로 행복한 나라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각자도생사회’ ‘불안사회’ ‘분노사회’ 등 최근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담론들을 지켜봐도 이러한 평가는 나름대로의 근거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봤듯, 베일런트는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해 고통에 대응하는 개인의 성숙한 태도와 의지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국가의 궁극적 존재 이유는 국민 다수의 행복한 삶에 있다. 국민 다수가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선 경제적 조건과 정신적 건강을 모두 어느 정도 성취해야 한다. 2020년대에 행복한 삶에 대한 담론과 정책들이 더욱 토론되고 모색되길 나는 소망한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의 굿모닝 2020s’는 2020년대 지구적 사회변동의 탐색을 통해 세계와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한국일보> 연재입니다. 매주 화요일에 찾아옵니다. 다음주에는 ‘코로나19’가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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