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여객기 보잉 747이 건물과 충돌한다. 화염이 치솟고 굉음이 진동한다. 7월 16일 개봉 예정인 할리우드 영화 ‘테넷’의 한 장면이다.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든 장면이라 생각할 수 있다. 제 아무리 할리우드라도 대형 여객기를 부술 정도는 아니라고 누구나 여기니까.
속단은 금물. ‘테넷’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이다. 놀런 감독은 아날로그의 짜릿한 실감을 스크린에 전하기로 유명하다. ‘테넷’도 예외는 아니다. 건물과 부딪히는 보잉 747은 실물이다. ‘테넷’ 촬영진이 미국 캘리포니아 빅터빌에서 촬영장을 물색하다가 발견한 낡은 비행기들 중 하나다. 놀런 감독은 보잉 747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실제 비행기를 사서 촬영하는 게 미니어처를 만들 거나 CG 작업을 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놀런 감독은 “충동구매였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놀런 감독은 ‘리얼리티 마왕’이다. 사실감을 위해서라면 건물을 폭파하기도 했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전함을 구입하기도 했다. 디지털 시대에도 필름 촬영을 여전히 고집하고, 아이맥스 촬영도 이어가는 그답다. 놀런 감독이 영화 속 사실감 극대화를 위해 어떤 작업들을 해왔는지 짚어본다.
폐건물 구입해 실제 폭파
영화 ‘다크 나이트’(2008)에는 악당 조커(히스 레저)가 검사 하비 덴트(애런 에크하트)를 병원에서 만난 후 건물 밖으로 걸어 나오는 장면이 있다. 여성 간호사복을 입고 비적비적 걷던 조커 뒤로 병원이 폭파된다. 조커의 악마성을 표현한 이 장면은 실제로 건물을 폭파해 만들었다. 폐공장을 구입해 병원으로 꾸민 후 폭약을 설치해 건물을 폭파했다. 수십 차례 리허설을 한 후에 만들어진 장면이다.
고압질소로 폭파 효과
꿈을 다룬 영화 ‘인셉션’(2010)은 초현실적 장면이 여럿 나온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장면들을 그럴 듯하게 보이도록 만들며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인셉션’의 명장면 중 하나가 프랑스 파리 길거리 장면이다. 코브(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애리어든(엘렌 페이지)이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길 건너편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한다. 꿈 속이기에 코브와 애리어든은 놀라지 않고 태연하게 자리에 앉아있는 장면이다. 당초 놀런 감독은 실제 폭약을 활용해 촬영하려 했으나 파리시 규정에 따라 고압질소를 이용해 이 장면을 찍었다. 배우와 스태프의 안전을 위해 스펀지 조각들로 노점 매대 등을 만들어 폭파시켰다.
꿈속 같은 세트
‘인셉션’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회전하는 복도에서 배우들이 액션을 펼치는 모습이다. 무중력에서 배우들이 뒤엉키며 싸우는 장면을 찍기 위해 실제로 회전하는 30미터 가량의 세트를 만들어서 촬영했다. 8개의 거대한 링이 들어간 세트는 대형 모터 2개로 작동됐다.
200만㎡ 옥수수밭 구매
영화 ‘인터스텔라’(2014)에서는 주인공 쿠퍼(매슈 메코너헤이)가 아들 딸과 트럭을 타고 옥수수밭을 헤치며 드론을 쫓는 장면이 2분 가량 나온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듯한 카메라 각도를 감안했을 때 거대한 옥수수밭이 필요한 장면. 놀런 감독은 캐나다 캘거리 인근 약 200만㎡에 달하는 옥수수 밭을 구매해 옥수수가 자라길 기다려 이 장면을 촬영했다. 우주 장면은 어쩔 수 없이 CG에 의존했지만, 지구상 장면은 최대한 CG를 피하려 한 노력이 작용했다. 환경 위기에 처한 근미래 거대한 먼지 폭풍이 몰려오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는 무독성 골판지를 얇게 조각 내 거대한 터빈으로 날려보냈다.
2차 세계대전 전함 60대 동원
영화 ‘덩케르크’(2017)는 2차 세계대전 초입 연합군 병사 34만명을 프랑스 해안에서 철수시킨 작전을 그리고 있다. 여러 군함과 전투기, 대규모 인력이 등장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놀런 감독은 영화 속 사실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쓰였던 전함 60대를 9개국에서 5개월에 걸쳐 구했다. 작동까지 가능한 전함을 찾느라 관계자들이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병사들이 모여있는 장면은 CG대신 3,000명을 동원해 촬영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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