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리, 더 자주’ 언택트 전력질주하다 놓친 물류센터 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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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빨리, 더 자주’ 언택트 전력질주하다 놓친 물류센터 방역

입력
2020.05.2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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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쇼핑 급성장에 도외시된 물류 안전

쿠팡과 마켓컬리 물류센터발 코로나19 확산으로 온라인 배송을 둘러싼 소비자 불안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28일 서울시내 한 택배 물류센터에 택배가 쌓여 있다. 뉴스1

쿠팡 물류센터에서 촉발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증가세가 가파르게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 사회가 온라인 쇼핑 뒷단의 안전을 도외시해온 것 아니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언택트(비대면)’ 시대의 속도와 편리함을 마음껏 누리면서도 이를 가능케 한 배송·물류 분야의 근무 환경에 대해선 외면해 온 사회 분위기를 이번 기회에 바꿔가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쿠팡 물류센터발 코로나19 확산으로 현재 물류센터 내 근무 환경으로는 보건당국이 내놓은 방역 수칙을 지키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물류와 배송은 시간과의 전쟁이다. 같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배송을 감당하느냐가 경쟁력이다. 쏟아지는 물량을 처리하느라 일분일초를 다투는 물류센터에서 근무자들에게 방역 지침 준수는 번거롭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마스크를 낀 채 수도 없이 물품을 쌓고 옮기다 보면 숨 쉬기조차 버겁다는 근무자들의 경험담이 줄을 잇는다.

관리자로서도 같은 회사 소속도, 매일 볼 사이도 아닌데 일용직 근무자들이 지침을 어길 때마다 일일이 지적해가며 굳이 싫은 소릴 들을 이유가 없다. 한 온라인 쇼핑몰 관계자는 “단기 또는 일용직 근무자가 대다수인 물류센터에서 관리자가 마스크와 장갑 착용 지침을 안내해도 보이는 데서만 지키면 솔직히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단기나 일용직 근무자들은 하루 이틀 일하고 나가는 경우도 많아 기업은 이들과 일일이 연락이 닿기조차 쉽지 않다. 일용직 근무자들이 이곳 저곳 옮겨 다니며 일하기 때문에 코로나19 무증상 감염자가 있을 경우 바이러스를 확산시킬 우려도 높다. 이런 상황이 결국 방역의 허점을 만들었을 것으로 업계는 추측하고 있다.

사재기 없앴지만 무한경쟁 빚어내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쿠팡과 컬리는 최근 몇 년 사이 급성장한 온라인 쇼핑몰의 대표 주자다. 특히 올 들어 코로나19 확산으로 오프라인 매장 방문이 줄고 비대면 소비가 늘면서 주문과 배송 물량이 급증했다. 외국과 달리 한국에 생필품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지 않은 게 이들 쇼핑몰 덕분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비대면 소비 보편화에 크게 기여했다.

문제는 엄청난 물량을 감당할 인력이다. 배송이 늘면 당연히 인력이 더 필요하지만, 기업에게 고용은 곧 고정비용 증가를 뜻하니 직원을 무작정 채용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날 그날 물량에 따라 인력을 탄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단기, 일용직 근무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컬리 측은 “주문 물량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배송 인력의) 일부는 직고용, 다른 일부는 도급으로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쿠팡 역시 마찬가지다. 직고용 배송 인력인 쿠팡맨은 전국 6,500여명이다. 필요할 때마다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단기 근로 형태인 쿠팡플렉스엔 하루 평균 약 4,000명이 지원하는데, 코로나19 이후엔 이보다 3배가량 늘었다.

물량 급증이 물류·배송 근무자들의 안전을 위협한 건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3월 한 쿠팡맨이 새벽 근무 중 사망했다. 당시 쿠팡맨 근무자들은 “코로나19 영향으로 물량이 크게 증가한 탓에 무한 경쟁에 내몰리며 휴식과 안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직고용이지만 계약직이면서 직무급제(직무 난이도나 책임 정도에 따라 임금에 차등을 두는 제도)가 시행돼 근무자들끼리도 경쟁이 가속화했다는 것이다.

다른 전자상거래 업체 관계자는 당시 “배송 인력 직고용을 늘린 쿠팡의 시도가 처음엔 눈길을 끌었는데, 결국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 같다”며 “계약직 직원은 사업주가 더 많은 물량을 배정하거나 업무량을 늘려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김포에 있는 SSG닷컴의 물류센터 '네오003' 내부. SSG닷컴 제공

물량과 인력 사이, 온라인의 딜레마

이런 상황에서 업계는 신세계그룹의 온라인 쇼핑몰 SSG닷컴의 인력 모델을 주목하고 있다. SSG닷컴은 택배업체나 인력 보급업체와 연 단위로 계약을 맺고 약속한 조건 안에서만 배송 업무를 의뢰한다. 당일 정해진 물량만 배송을 진행하고, 그 이후 주문은 다음날 배송으로 넘기는 식이다. 하루 총 배송량은 12만~13만건으로 한정돼 있다. 쿠팡의 하루 배송량이 최대 330만건을 찍은 적도 있다는 업계의 전언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SSG닷컴은 경기 김포와 용인에 총 3개 물류센터를 운영한다. 한 센터에서 같은 시간대에 일하는 물류 근무자와 배송 인력은 총 300~350명 수준으로 다른 물류센터에 비해 적은 편이다. SSG닷컴에 따르면 이들은 대부분 인력 보급업체와 장기 계약을 맺은 상태다. 단기, 일용직 근무자에 의존하는 것보다 인력 운영이 안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한계도 명확하다. 소화할 수 있는 물량이 정해져 있으니 배송이 몰리면 늦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고스란히 고객 불만으로 이어진다. 탄력적 인력 동원이 가능한 업체들보다 성장 속도가 느린 건 당연하다. SSG닷컴 관계자는 “물량과 인력 문제는 늘 딜레마인 만큼 다른 업체들의 단기 인력 충원을 나쁘다고만 볼 건 아니다”라며 “코로나19라는 특별한 상황 때문에 우리의 인력 모델이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물류센터발 코로나19 확산과 과거 배송 기사 사망 사고는 모두 우리 사회가 언택트 시대를 향해 전력질주 하는 과정 중 빚어졌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는 점점 더 빠른 배송, 더 잦은 배송, 더 싼 배송을 원했다. 이를 따라가야만 했던 기업들은 소비자에게 직접 보이지 않는 배송이나 물류의 근무 환경을 애써 외면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상황에 기본적인 방역 조치를 안 하고 싶은 회사가 어디 있겠나”라고 되물으며 “방역이 어려운 구조적, 상황적 한계가 걸림돌”이라고 토로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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