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에 이어 이란에도 강수를 빼들었다. 민간 핵 협력 관련, 이란에 부여한 제재 유예 조치를 취소하면서 핵협상에 나서든지, 아니면 경제를 망하게 놔두든지 선택하라는,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최후 통첩을 날린 것이다. 퇴로를 두지 않는 트럼프식 협상 전술을 이란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브라이언 후크 미 국무부 이란특별대사는 27일(현지시간) 전화 언론 인터뷰에서 “이란 정권은 역사상 최악의 경제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이란 지도자는 우리와 협상하거나 경제 붕괴를 감수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이날 “이란 정권은 ‘핵 벼랑 끝 전술’을 지속해 왔다”면서 이란의 민간 핵 협력과 관련한 제재 유예 가운데 부셰르 원자력발전소 건을 제외한 모든 조치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우라늄 농축에 사용되는 원심분리기 개발 및 생산에 관여한 이란 과학자 2명도 제재명단에 추가로 올렸다.
미국의 이런 고강도 대응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취해 온 ‘최대 압박’ 정책의 연장선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계속하고 있다는 확신 아래 2018년 5월 국제사회의 협상물인 ‘이란 핵합의(JCPOAㆍ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전격 탈퇴했다. 올해 1월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쿠드스군 사령관 폭사와 뒤이은 이란의 이라크 주둔 미군 기지 공격으로 군사적 충돌 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여기에 최근 석유를 매개로 한 베네수엘라와 이란의 밀월 분위기가 짙어지면서 미국의 분노는 더해졌다. 이란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여파로 극심한 연료난에 시달리는 베네수엘라에 유조선 5대 분량, 총 153만배럴의 휘발유를 공급했다. 이에 크레이크 팰러 미군 남부사령관은 “이란은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시도를 했다. 적절한 대응 방식을 택할 것”이라며 보복 의지를 분명히 했다.
강경책 일변도인 일련의 흐름을 감안하면 이란이 협상장에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평가다. 독일 dpa통신은 “핵 전문가들은 미국이 제재 유예를 끝낼 경우 이란은 더 높은 수준의 우라늄 농축을 시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되레 이란 핵 활동 강화 가능성을 점쳤다. 다만 미국이 궤멸 수준의 경제 상황을 경고한 만큼 이란에 일정 부분 충격 효과를 줄 것이란 전망도 있다. 베넘 테일블루 민주주의방위재단 선임연구원은 AFP통신에 “제제 유예 조치 폐기는 트럼프 행정부가 용납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겠다는 의미”라며 “이란 정부가 민간 핵 프로그램에 관해서도 협상에 임해야 한다는 점을 강제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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