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ㆍ개발에 공적자금 투입”… 공공재 성격 강조
“시장성 낮지만 대규모 투자, 제약사 영리 보장해야”
‘열흘에 10달러(약 1만2,300원)냐 4,500달러(약 555만원)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는 렘데시비르의 가격을 두고 벌써부터 논란이 뜨겁다. 약품 연구에 공적자금이 투입된데다 글로벌 공공재 성격을 고려해 미국 정부가 가격 책정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크지만, 제약사의 영리추구권을 확실히 보장해야 신약 개발이 가능하다는 반박도 만만찮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6일(현지시간) “미국 납세자들은 렘데시비르 개발 자금을 대고도 가격과 관련해선 발언권이 없다”고 꼬집었다. 길리어드사의 렘데시비르 개발에 정부기관들이 깊이 관여한데다 투입된 공적자금만도 최소 7,000만달러(약 865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공동 특허권’을 주장하지 않으면서 “정치적 압력 외에는 딱히 가격 책정에 개입할 수단이 없다”는 게 WP의 지적이다.
실제 렘데시비르가 코로나19 치료제로 ‘재발견’되는 과정에서 미 정부 기관들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게 중론이다. 단적으로 미 정부 산하 과학자들은 2015년 에볼라 사태 때 치료제를 찾는 과정에서 길리어드사 데이터뱅크에 ‘버려져 있던’ 수천 개의 화합물 중 렘데시비르 원료를 선별해냈다. 이후 동물실험ㆍ임상시험을 주도한 것도 국립보건원(NIH) 같은 공공기관이었다.
이와 관련, 미 소비자단체 퍼블릭시티즌은 “길리어드가 약을 혼자 만든 게 아니고 시민들도 개발을 도운 이해관계자”라며 열흘 치료코스 적정가로 ‘10달러’를 제시했다. 영국 리버풀대 연구팀은 “하루 0.93달러면 길리어드도 이윤 추구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적정가 설정 문제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줄곧 강조해온 ‘공평한 분배’ 원칙과 직결된다. 전염병 퇴치에 매진 중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선진국에서 앞으로 몇 달간 코로나19 확산을 늦추는데 성공하더라도 다른 곳에서 확산이 심각하다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면서 “백신ㆍ치료제 등이 공공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시장성이 낮은 항바이러스제 개발을 독려하기 위한 유인책으로 공적자금을 지원했던 정부가 뒤늦게 가격 책정에까지 관여하는 게 옳으냐는 반박도 있다고 WP는 전했다. 길리어드 측도 정부의 역할을 부정하진 않지만 모(母)화합물을 자사 연구진이 2009년에 발견했음을 주장하며 “공적자금이 지적재산권 형성에 미친 영향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실제 시장에선 훨씬 높은 가격이 거론되고 있다. 이달 초 의약품가격 평가업체 임상경제리뷰연구소(ICER)는 열흘에 4,500달러로 제시한 바 있다. 심지어 최대 1만달러까지 책정한 금융기관도 있다고 WP는 덧붙였다. 미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길리어드는 투자자들로부터 10억달러에 달하는 투자금 회수 압박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정치권과 시장 양쪽에서 동시에 압박을 받는 탓에 길리어드 측은 고민이 깊다. 하지만 결국은 전 세계의 여론을 무시하기 어려울 거란 얘기가 나온다. 2013년 C형 간염 치료제 ‘소발디’를 12주에 무려 8만4,000달러(약 1억원)로 책정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뒤 결국 인도를 비롯한 개발도상국 공급가를 100분의 1로 낮췄다는 점에서다. 길리어드는 일단 “미국과 전 세계 환자들의 접근성에 문제가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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