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는 꼭 지켜져야 한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일본의 사죄, 그리고 그간 일궈온 투쟁의 성과가 훼손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25일 취재진 앞에서 선 이용수(92) 할머니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바람과 달리 진심을 왜곡하려는 시도들이 끝없이 고개를 든다. 이 할머니 행보의 ‘배후설’을 주장하며 진정성을 오염시키는 인사들부터 위안부 역사를 ‘매춘’에 빗대는 극우 학자들까지, 진영과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온라인에서는 할머니를 향한 조롱이 판을 치고 있다. 이 할머니를 ‘노망난 늙은이’라고 비하하며 인신공격을 하거나 ‘윤미향이 국회의원이 되니 질투가 난 것이다’는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진보 진영도 예외는 아니어서, 친여 방송인인 김어준씨는 “기자회견문을 읽어보니 이 할머니가 쓰신 게 아닌 게 명백해 보인다”며 배후설을 주장했다. 이 할머니가 반박하자 “왜곡된 정보를 누군가 할머니께 드린 건 아니냐”며 순수성을 의심했다.
할머니의 상처를 가장 아프게 헤집는 건 극우 학계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태를 틈타 위안부 존재를 부정하는 것으로 모자라 역사 뒤집기까지 시도하고 있다. ‘반일종족주의’ 저자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은 할머니의 기자회견 바로 뒷날 심포지엄을 열고 “위안부는 소득 수준이 높은 매춘부였다”고 망언을 쏟아냈다. “매춘업자의 취업 사기에 피해를 본 사람들로 봐야 한다”(류석춘 연세대 교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두 번의 기자회견을 돌이켜보면, 이 할머니의 메시지는 별 다른 해석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명료하다. 위안부 문제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합심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 또 정의연 사태를 계기로 위안부 운동의 방향성에 대해 재고해야 한다는 것. 이토록 뚜렷한 외침을 입맛대로 해석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손가락질과 거짓 속에 부끄러웠던 이용수에서 오롯한 내 자신 이용수를 찾았다”는 할머니의 용기를 더 이상 헛되게 해서는 안된다.
이 할머니의 절규 속에 피해자 할머니 한 분이 또 별세하면서 생존 피해자는 이제 17분밖에 남지 않았다. ‘17명의 증인’들이 역사를 지키고 있는 동안, 지난 30년 간의 위안부 운동을 돌이켜 보고 일본의 사죄를 이끌어 낼 만한 대안을 찾아야만 한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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