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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스리랑카 극우민족주의 ‘전투적 불교’, 총선 앞두고 뭉쳤다

입력
2020.06.13 04: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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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의 ‘민족주의 승려’ 아투랄리야 라타나 테라(앞줄 가운데)와 갈리고다 아트 구나나사라 테라(앞줄 오른쪽)가 3월 16일 수도 콜롬보에서 열린 정치동맹체 ‘우리 민중의 힘’ 출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총선 후보 등록 서류에 서명하고 있다. 우리 민중의 힘 페이스북 캡처
스리랑카의 ‘민족주의 승려’ 아투랄리야 라타나 테라(앞줄 가운데)와 갈리고다 아트 구나나사라 테라(앞줄 오른쪽)가 3월 16일 수도 콜롬보에서 열린 정치동맹체 ‘우리 민중의 힘’ 출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총선 후보 등록 서류에 서명하고 있다. 우리 민중의 힘 페이스북 캡처

지난 3월 16일 스리랑카 최대도시 콜롬보에 아투랄리야 라타나 테라, 갈리고다 아트 구나나사라 테라 등 내로라하는 ‘민족주의 승려’들이 모였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정치동맹체 ‘우리 민중의 힘’을 출범시켜 다가오는 총선에 후보를 내겠다”고 발표했다. 공동대표를 맡은 라타나 승려는 “총선에서 20석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만 해도 4월 25일로 예정됐던 총선은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6월 중순으로 미뤄진 상태다.

‘우리 민중의 힘’에는 장관 출신인 지완 쿠마라나퉁가를 비롯해 구 여권인 스리랑카 자유당(SLFP) 일부 세력이 가담했다. 또 SLFP에서 갈라져 나온 ‘스리랑카 인민전선(SLPP)’ 깃발로 지난 11월 대통령에 당선된 고타바야 라자팍사의 지원 조직 ‘글로벌 스리랑카 포럼’도 동참했다.

이번 정치동맹체의 출범은 스리랑카 극우민족주의 진영의 선두에 서 왔던 ‘전투적 불교’ 세력의 재결집을 의미한다. 두 대표 중 라타나 승려는 민족유산당(JHU) 출신으로 제도권 정치에 이미 진입한 ‘승려 국회의원’이다. 또 다른 대표인 구나나사라는 제도권 밖에서 활동해온 불교극단주의 조직 ‘보두발라세나(불교도의 힘ㆍBBS)’ 사무총장이다. 이 두 사람이 새 정치동맹체의 대표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라타나 승려를 보자. 그는 2004년 3월 출범한 JHU를 발판삼아 제도권 정치에 입문한 후 16년간 ‘승복 입은 정치인’들 중 비교적 젊은 세대를 대표해온 인물이다. 극우로 지목되는 그가 극좌 마르크스주의 정당인 인민해방전선(JVP)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는 이력은 상당히 흥미로운 대목이다. 스리랑카에선 극좌 정당과 극우 정치세력이 ‘싱할라 민족주의’라는 공통 분모를 통해 호환 가능하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두 극좌-극우 정치세력 모두 소수 타밀족과의 내전(1983~2009) 당시 “정치적 협상이 아닌 전쟁으로 반군을 무찔러야 한다”며 군사적 해결책을 적극 옹호해왔다. 2000년대 스리랑카 정부와 타밀족 반군인 ‘타밀타이거(LTTE)’ 양측의 휴전ㆍ평화협상 과정에서도 이들 두 소수정당은 정부에 강경 대응을 주문하면서 제도 정치권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들의 바람대로 스리랑카 인종분쟁은 군사적 종결을 보았고, 결국 타밀족 대학살로 마감됐다.

주류 ‘싱할라족의 우수성과 자부심’을 주창하는 불교민족주의 세력의 강고한 연대는 여전하고, 북동부 타밀 지역에서는 불교사원 건설 등 문화적 식민화와 함께 군사화가 꾸준히 진척되고 있다. 내전은 공식적으로는 종결됐지만 분쟁의 불씨는 가시지 않았다. 게다가 5, 6년 전부터 부상중인 반(反)무슬림 캠페인과 간헐적인 폭동까지 고려하면 이번 불교극우정치 동맹체의 발족은 크나큰 악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그 ‘반무슬림’ 혐오 캠페인에 앞장 선 인물이 ‘우리 민중의 힘’의 공동대표 중 한 명인 구나나사라 승려다. 그는 동맹체 출범과 거의 동시에 북서지방 중심도시 쿠르네갈라 지역구에 총선 출사표를 던졌다. 구나나사라는 2012년 JHU에서 분파한 후 보다 더 전투적인 불교극단주의 조직 BBS를 만들고 사무총장을 맡아왔다. 말하자면 스리랑카 ‘전투적 불교’ 역사에서 후발주자의 대표격이다.

그는 2014년부터 할랄푸드 반대, 무슬림 상점 보이콧 등으로 시작된 반무슬림 캠페인을 주도한 핵심 인물이다. 특히 그의 배후로는 라자팍사 현 대통령이 어김없이 거론된다. 지난 5년간 반무슬림 정서에 기생한 정치인이 바로 라자팍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지난해 11월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면에도 같은 해 4월 22일 부활절 테러 이후 더욱 고조된 반무슬림 정서가 자리잡고 있다. 여기엔 그의 ‘스트롱맨’ 이미지도 우호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스리랑카 선거관리위원회는 구나나사라 등 일부 후보의 등록을 반려했지만 구나나사라는 현재 재심을 요청한 상태다.

37년간 이어진 정부군과 타밀반군의 내전 종식 11주년을 맞이한 18일 스리랑카 콜롬보 인근의 힌두사원에서 한 시민이 내전 과정에서 희생된 이를 추모하는 등불을 밝히고 있다. 콜롬보=EPA 연합뉴스
37년간 이어진 정부군과 타밀반군의 내전 종식 11주년을 맞이한 18일 스리랑카 콜롬보 인근의 힌두사원에서 한 시민이 내전 과정에서 희생된 이를 추모하는 등불을 밝히고 있다. 콜롬보=EPA 연합뉴스

구나나사라는 2016년 법정에서 당시 ‘강제 실종’ 6년째인 만평가이자 언론인 프라기트 에크날리고다의 아내 사냐 에크날리고다를 범죄가 성립될 만큼 집요하게 괴롭힌 혐의로 2018년 6월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후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당시 대통령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의 사면으로 지난해 5월 23일 석방됐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의 우려대로 그는 정치활동을 즉각 재개했다. 그 첫 행보는 7월 7일 중부 캔디지방 집회였다. 1,000여명의 승려들과 추종자들이 모인 이 집회에서 구나나사라는 늘 그래왔듯 “우리 승려들이 나서서 싱할라족 정부를 세워야 한다”면서 “우리는 이 나라의 부름에 상응하고 싱할라족을 보호할 그런 의회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격정적으로 연설했다. ‘싱할라 불교도 국가’ 건설을 주장한 그는 정치인들을 향해서는 “이 나라의 주인은 우리 싱할라족”이라며 “이슬람 극단주의자와의 싸움은 승려들이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연설했던 캔디지방은 스리랑카 불교의 상징성이 강한 도시이자 2018년 3월 ‘반무슬림’ 폭동의 소용돌이가 가장 강렬하게 휘감았던 곳이다. 구나나사라의 꾸준한 극우정치 행보를 감안하면 이번 ‘우리 민중의 힘’을 통해 총선 출사표를 던진 건 지극히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승려들이 정당을 만들고 선거를 통해 제도권 정치로 진출하는 ‘불교의 정치세력화’가 민주주의 제도 내에서 허용되는 건 결코 흔치 않다. 물론 불교민족주의자들이 왕성하게 정치행위를 하는 경우는 미얀마의 로힝야족 대학살이나 반무슬림 폭동 같은 흑역사에서도 관찰된 바다. 또 승려들의 ‘정치 참여’ 혹은 ‘정치 행위’로 범위를 넓혀보자면 캄보디아와 태국, 그리고 1960~1970년대 베트남이나 라오스에 이르기까지 지난 세기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다양하게 펼쳐졌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승려들이 유권자의 표를 받아 선출되는 다분히 형식적인 의미에서의 ‘민주적’ 불교정치는 스리랑카가 유일하다. 스리랑카는 2004년 4월 JHU가 의회에 입성한 이래 승복 입은 정치인들이 의회에서 사라진 적이 없다. ‘우리 민중의 힘’ 동맹도 그 역사의 연장선이다. 이들이 내건 선거캠페인 모토는 ‘싱할라 민족주의’와 ‘반무슬림’이다. 만일 예정된 총선이 치뤄지고 이들의 의회 진출이 현실화되면 ‘우리 민중의 힘’은 민주적 절차를 거쳐 정당성을 부여받은 또 하나의 정치세력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스리랑카는 최근 코로나19 대처 과정에서 무슬림 커뮤니티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부추길 수 있는 정책을 강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예컨대 코로나19로 사망한 이들의 화장을 의무화한 게 대표적이다. 이 화장 의무화는 매장의 전통을 중시하는 무슬림들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하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이런 문화적 강제가 특정 커뮤니티에 대한 차별일 뿐만 아니라 마치 무슬림들의 매장 방식이 감염병을 확산시키는 듯한 오해와 편견을 조성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반무슬림’ 선동가가 제도 정치권 진출을 노리는 움직임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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