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전쟁이 아니라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수단이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이 발언에 중국이 열광하고 있다. 반면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왔다”며 중국 책임론을 강조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향해서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일본이 건네는 말 한마디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국제사회에서 궁지에 몰린 중국이 일희일비하며 일본과 어떻게든 보조를 맞추려 애쓰는 모습이다.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에는 무라카미의 방송 내용이 뒤늦게 인용돼 입소문을 타고 있다. 그는 지난 22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코로나19 사태와 관련 “우리에게 적대감과 증오는 필요하지 않다”며 “바이러스가 모두 지나가도 사랑과 용서가 없으면 세상은 차갑고 무미건조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위로가 전해지자 SNS에서는 “무라카미는 인간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지녔다”며 찬사가 쏟아졌다. 웨이보 조회 수는 5일 만에 8,400만회를 넘어섰다. 코로나19 발병지인 우한을 중심으로 중국 사회의 어두운 면이 집중적으로 부각된데다 미국 등 서구와의 갈등이 고조돼 스트레스가 가중된 상황에서 모처럼 중국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적 감동과 현실은 달랐다. 아베 총리가 25일 “코로나바이러스는 중국에서 세계로 확산된 것이 사실”이라며 “동맹 미국과 협력하면서 다양한 국제적 과제에 대응하겠다”고 미국을 두둔하고 중국을 견제하자 바로 일본을 향해 공세를 폈다. 지난해 12월 중국 청두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일본과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는 상황에서 자칫 미국의 대중 포위망에 갇힐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묻어있다.
관영 환구시보는 27일 “일본은 호주처럼 공개적으로 미국 편에 서지 말고 최대한 중립을 지켜야 한다”면서 “그래야 중일 관계에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리하이둥(李海東) 중국외교학원 교수는 “일본이 전염병 문제를 정치화하고 중국에 오명을 씌우려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것으로 보인다”고 혹평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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