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그룹이 총수인 박현주 회장 일가가 사실상 지배하는 회사에 계열사를 통해 430억원대 ‘일감 몰아주기’를 한 사실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드러났다. 공정위는 미래에셋에 약 44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내렸지만 “(고발할만한) 증거는 찾지 못했다”며 박 회장과 회사를 검찰에 고발하지는 않았다.
미래에셋은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청와대 정책실장)이 학자 시절부터 “재벌그룹의 각종 편법을 총망라한 지배구조”라고 강하게 비판한 회사다. 이에 지난 2년 반의 조사 과정에서 공정위가 중징계에 나설 거란 관측이 높았으나, 결국 과징금 수준에서 마무리되게 됐다. 반면 최악의 상황을 피하게 된 미래에셋 입장에서는 공정위 조사로 발목이 잡혀 있던 발행어음 사업 등 신 사업 추진에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미래에셋, 3년간 몰아준 일감 430억
공정위는 계열사를 동원해 총수일가 지배회사인 미래에셋컨설팅에 일감을 몰아준 혐의와 관련해 미래에셋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43억9,100만원을 부과한다고 27일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미래에셋은 2015~2017년 미래에셋자산운용, 미래에셋대우, 미래에셋생명 등 11개 계열사로 하여금 미래에셋컨설팅이 운영한 블루마운틴 컨트리클럽(CC)과 포시즌스호텔을 이용하도록 했다. 미래에셋컨설팅은 그룹 대표자(동일인)인 박 회장이 48.63%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배우자와 자녀 등 친족 지분을 모두 더하면 91.86%에 달하는 사실상의 가족회사다.
계열사들은 블루마운틴CC와 포시즌스 호텔에서 임직원이 법인카드를 사용하도록 하고, 행사ㆍ연수를 진행했으며 명절 선물도 두 곳에서 구매했다. 블루마운틴CC에서는 골프장 진입로와 직원 유니폼, 스코어카드 등에 계열사 로고를 노출하는 광고도 진행했다.
이런 방식으로 미래에셋컨설팅에 몰아준 일감은 총 430억원에 달한다. 블루마운틴CC는 2016년 계열사 매출 비중이 72%까지 높아지면서 2013년 개장 후 3년만에 흑자로 전환했고, 포시즌스호텔도 2015년 개장 이후 3년간 적자 폭이 현저히 감소했다. 미래에셋컨설팅은 2017년 기준 호텔 관련 사업부문 매출액 기준 국내 8위 회사로 뛰어올랐다.
공정위는 미래에셋의 이런 행위가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이익 제공 행위’라고 판단했다. 총수 일가가 일정 지분(상장사 30%, 비상장사 20%) 이상을 보유한 계열사와 거래하는 경우, 거래 조건을 합리적으로 고려하거나 다른 사업자와 비교 등을 통해 거래해야 하는데 이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직접 지시’ 유무가 고발 여부 갈라
애초 공정위가 미래에셋 조사에 착수한 2017년에는 박 회장이나 그룹 계열사에 대한 검찰 고발 등이 이뤄질 거란 전망이 많았다. 당시 김상조 위원장이 취임 전 몸담았던 경제개혁연대 보고서에서 “미래에셋이 편법을 동원해 지주회사 관련 규제를 회피해 왔다”고 지적하는 등 강경 입장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금융당국도 공정위의 검찰 고발 조치가 나오면 박 회장의 대주주 적격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미래에셋의 발행어음 사업 인가 심사를 미뤄 왔다. 하지만 떠들썩했던 조사 과정과 달리 결국 공정위가 과징금 부과에 그치면서 일각에선 “용두사미에 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가 박 회장을 고발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증거 불충분’이다. 박 회장이 계열사에 일감몰아주기를 ‘지시’했는지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지난해 같은 혐의로 동일인을 고발했던 태광(이호진 전 회장)의 경우, 김치와 와인 구매량을 할당하는 등 구체적인 일감몰아주기 지시 정황을 적발해 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포렌식을 통해 입수한 증거에서도 이 같은 정황을 찾아내지 못했다. 박 회장이 회의에서 블루마운틴CC나 포시즌스호텔의 수익 상황이나 장점 등을 언급한 적은 있지만 일감몰아주기를 하라는 지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정진욱 기업집단국장은 “고발지침상 특수관계인의 위법성 정도가 ‘중대한 자’여야 고발이 가능한데, 박 회장의 위법성이 ‘지시’에는 이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며 “다만 회의에서 관련 보고를 받고 묵인을 했다는 점에서 ‘관여’를 한 수준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미래에셋, 발행어음 재추진 탄력
비록 수십억원의 과징금은 내게 됐지만, 미래에셋은 이번 결정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박 회장 고발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면서 3년 가까이 중단된 신사업 추진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발행어음 사업이다. 발행어음은 증권사가 자체 신용으로 발행하는 단기(만기 1년 이내) 금융상품을 가리킨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초대형 투자은행(IB)’만 사업을 할 수 있다. 인가를 받은 증권사는 자기자본의 2배 한도 내 자금을 조달해 기업 및 부동산금융투자, 채권 투자 등에 활용한다.
자기자본 9조원으로 업계 1위인 미래에셋대우는 2017년 초대형 IB 자격을 갖추고 금융당국에 발행어음 사업 인가를 신청했지만 공정위 조사로 인가가 보류돼 왔다. 그 동안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이 먼저 인가를 받고 사업을 진행 중이다.
미래에셋대우 관계자는 “발행어음 사업 심사 재개와 관련해 필요한 (금융당국의) 작업에 적극 협조하고 앞으로도 모험자본 활성화에 더욱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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