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감염병 방역을 위한 애플리케이션(앱) 출시가 본격화 하자 ‘기술 주권’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개별 국가가 주도하던 개발 초기와 달리 미국 정보기술(IT) 업체인 구글ㆍ애플의 입김이 세지면서다. 국가 방역체계와 직결되고 민감한 개인정보도 연관된 IT기술을 유럽 독자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거대 IT기업을 등지고선 빠른 앱 개발이 불가능해 ‘기술 주권’ 의지를 밝히는 것 이상의 성과를 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영국 BBC방송은 26일(현지시간) “스위스와 라트비아가 구글ㆍ애플 협력 기술을 바탕으로 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추적 앱을 조만간 출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코로나19 추적 앱은 감염자 동선을 파악해 찾아 낸 접촉자의 빠른 검사와 격리를 유도하는 데 쓰인다. 라트비아는 이르면 오는 28일에, 스위스는 6월 중순에 각각 앱을 배포할 계획이다. 일명 ‘노출 알림’ 기술은 지난 21일 첫 버전이 공개됐고 전 세계 23개국이 이를 바탕으로 한 코로나19 추적 앱 사용을 계획하고 있다.
거대 기업의 영향력이 커지자 유럽의 경계심은 높아졌다. 이날 유럽 5개국 정부(독일ㆍ프랑스ㆍ이탈리아ㆍ스페인ㆍ포르투갈)는 공동성명을 내고 코로나19 추적 앱과 관련 “민주적인 정부가 유럽의 가치에 맞게 시민들이 수용할 수 있다고 판단ㆍ평가한 방식대로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관 기술 협력시 최종 결정권은 정부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앞서 독자 방식으로 앱을 개발하던 독일 정부는 애플의 협조를 얻지 못해 지난달 구글ㆍ애플의 추천 방식을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공동성명에서) 회사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유럽이 실리콘밸리 기업에 대한 의존성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분석했다. 이들 5개국은 핵심기술 분야의 국제표준을 개별 기업과는 독립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게 유럽의 목표라는 점도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코로나19 추적 앱을 유럽 주도로 진행하긴 어려워 보인다. 기본적으로 스마트폰 운영체제(OS)를 장악한 구글ㆍ애플의 협조 없인 어떤 앱도 개발할 수 없다. 더구나 올 여름 관광 재개를 목표로 유럽 국가 간 이동 제한을 풀기 시작한 상황에선 한시라도 빨리 국가 간 연계 운영이 가능한 앱이 필요하다. IT전문매체 테크크런치는 “앱이 유럽 안에서 원활하게 상호 운용되지 않으면 (방역에 필요한) 정보에 공백이 생길 것이고 결국 그 효과를 떨어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장은 실리콘밸리 기술 외엔 선택지가 없는 셈이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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