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승계 위해
삼바 가치 부풀리기 ‘묵시적 승인’ 관여 정황 확인 주력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듯
/그림 1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한호 기자.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26일 소환하면서 이 부회장의 사법처리 방향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의 판단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와 관련한 파기환송 재판에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검찰이 이 부회장을 부른 건 2018년 11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 고발에 따라 수사에 착수한 지 1년 반만이다. 검찰은 2015년 삼성바이오가 과거 자본잠식 상태였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단독지배)에서 관계회사(공동지배)로 회계 기준을 바꿔 4조5,000억원의 장부상 이익을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전 회계처리 때 합작사인 미국의 제약회사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 부채를 누락했는데, 이를 반영하고도 자본잠식 상태가 아니었던 것으로 꾸미기 위해 뒤늦게 회계처리 기준을 바꿨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2014년 삼성에피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 추진이나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일정을 전화로 보고 받은 사실 등 삼성바이오 현안에 관여한 정황 관련 증거도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룹 수뇌부인 전 미래전략실 임직원 등에 대한 조사도 병행했다. 하지만 삼성바이오와 이 부회장 측은 ‘당시 회계처리는 국제회계기준에 부합하는 처리였다’며 의혹 자체를 부인했다.
삼성바이오 회계 부정 의혹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연결되면서 검찰 수사망이 확대됐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였던 제일모직이 삼성바이오를 소유한 구조여서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 비율(제일모직 1주 대 삼성물산 0.35주)을 만들기 위해 콜옵션 부채를 누락했다고 의심해왔다. 증선위 결론 역시 ‘바이오젠의 콜옵션을 감안하면 처음부터 관계회사로 회계처리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부회장을 상대로 자신이 합병 당시 갖고 있지 않던 삼성물산의 수주 실적을 고의로 축소하고, 제일모직 주식 가치를 띄운 각각의 주가 조작 정황이 담긴 증거 자료를 제시하면서 이 부회장이 관련 현안 보고를 받고 묵시적 승인 등으로 관여한 정황을 확인하는 데 주력했다. 올해 들어 이 부회장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장(사장), 최치훈 삼성물산 이사회 의장(사장),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등 고위 인사를 반복 소환하며 이 부회장 관여 여부에 관한 수사를 다져왔다. 반면 이 부회장은 이날 검찰 조사에서도 제기된 의혹에 대해 “보고 받거나 지시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부회장의 혐의 인정 여부와 추가로 확인된 혐의 소명 정도에 따라 한두 차례 더 소환 조사한 뒤 연루된 삼성 임직원에 대한 기소 범위를 정하고 함께 사법처리 결론을 낼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수사 결론이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검이 삼성바이오 회계 부정 의혹과 검찰이 지난해 5, 6월 삼성 임직원 8명을 기소한 증거 인멸 사건의 기록을 제출했지만 재판부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상 승계작업 일환으로 이뤄진 개별 현안을 특정할 필요가 없다”며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한편 이 부회장이 3년여 만에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삼성 내부는 당혹감과 긴장감에 휩싸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비상경영 시국에 자칫 ‘총수 부재’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감도 나온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아무리 경영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고 해도 총수가 4년째 재판에 연루돼 있다 보니 큰 전략을 세우고 방향을 전환하는 작업은 그간 멈췄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밝혔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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