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최성용의 도시연서] 자전거는 실패했다, 전동킥보드는?

입력
2020.05.26 18:00
수정
2020.05.26 18:15
25면
0 0
한강시민공원 여의도지구 자전거도로에 다양한 자전거와 보행자가 뒤섞여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강시민공원 여의도지구 자전거도로에 다양한 자전거와 보행자가 뒤섞여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자가용 승용차 중심의 교통체계에서 오는 문제점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대기오염과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한두 명의 이동과 주차를 위해 과도한 도시공간이 할당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나아갔다. 도심 주차요금을 올리고 혼잡 통행료를 징수하는 등의 방식으로 자가용 승용차를 억제하고 대중교통을 편리하고 쾌적하게 만들려 했다. 그리고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하고자 했다.

자전거의 교통 분담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1995년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본격화했다. 법률은 그동안 사각지대에 있었던 자전거에게 적합한 법적 지위를 부여했고, 자전거도로를 설치할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 그전까지는 자전거도로도 없었고, 자전거는 ‘차마’로만 구분되어 차도로 다녀야 했다. 하지만 목숨 걸고 차도로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자전거는 차도와 인도를 오르내리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인도를 달리다 사고를 내면 자동차가 인도에서 사람을 친 것과 별로 다르지 않게 취급되었다.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법률과 환경을 위한 일이라는 대의명분을 등에 업고 1995년 이후 전국적으로 자전거도로 설치 붐이 일었다. ‘작년 한 해 ○○㎞의 자전거도로를 설치했다’는 보도자료가 친환경 정책의 성과로 발표되었다.

하지만 자전거도로의 대부분은 인도에 그어졌다. 자전거 이용 활성화의 목적이 자가용 승용차의 교통 수요를 자전거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다면, 자동차의 공간을 줄이고 자전거의 공간을 늘리는 방향이 되어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가뜩이나 열악한 보행 공간을 놓고 보행자와 자전거가 경쟁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인도에 줄을 긋긴 했지만, 길을 걷는 사람들은 그 길을 자전거도로로 잘 인식하지도 못했다. 자전거 운전자는 자전거도로를 막고 있는 보행자에게 화를 냈고, 보행자는 위협적인 자전거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친환경 정책의 성과로 늘어난 자전거도로의 숫자를 발표하길 즐겼던 지자체들은 쉽게 숫자를 늘릴 수 있는 인도에 줄긋기를 멈추지 않았다. 한때 보행자로 가득 찬 종로의 보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전거 표시가 그려져 있을 정도였다. 결국 자전거도로 건설에 2,500억 원을 쓴 다음인 2015년에 가서야 행정자치부는 자전거도로 일제 정비계획을 발표해 폭 2m가 되지 않는 보행로에 설치된 자전거도로를 원상복구하겠다고 발표했다.

한쪽에서는 차도를 줄여 자전거도로를 설치하기도 했다. 자전거의 교통 분담률을 높이는 것이 정책의 목표였으니 방향은 잘 잡았다. 하지만 이 역시 세심한 접근이 필요했다. 많은 예산이 투입되어 차선을 줄여 만든 번듯한 자전거도로 위에도 자전거가 그리 많지 않았다. 애초에 자동차 중심으로 교통체계가 짜여 있고, 자동차를 타고 생활할 것을 전제로 집과 직장의 위치를 정한 도시에서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3차선의 도로에 자동차 수백 대가 지나갈 때, 자전거는 한 대 지나갔다. 줄어든 차로에 자동차는 막히고, 새로 생긴 자전거도로는 비어있었다. 자동차 운전자들은 이용하는 사람도 없는 자전거도로를 만들기 위해 도로를 줄여 자동차 이용자를 불편하게 만들고 세금을 낭비했다고 생각했다. 항의가 잇따랐다. 그렇게 도로 폭을 줄이고 수백억 원을 들여 만든 인천 연수구, 남동구 일대의 자전거도로는 수억 원을 들여 원상복구했다. 서울의 군자역에서 어린이대공원역 방향 900m의 자전거도로가 차도로 원상복구됐다. 대전의 대덕대로의 차도를 줄이고 설치된 자전거도로 역시 이용자가 거의 없자 1년 4개월 만에 차도로 복구됐다. 기존의 자전거 교통 수요가 많은 곳을 중심으로 설치했어야 하지만, 면밀한 조사 없이 명분을 좇아 자전거도로를 만든 결과였다. 세금 낭비와 비판이 반복하다 보니 시가지 도로에 자전거도로를 설치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1995년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대한 법률’의 제정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일었던 자전거 이용 활성화 붐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자전거의 수송 분담률은 2000년 1.37%에서 2015년 1.43%가 됐다.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지난 21일, 전동킥보드를 비롯한 개인형 이동장치에 자전거와 같은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인형 이동장치의 이용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은 1995년의 자전거처럼 차도와 인도를 오르내리는 ‘차마’였다. 인도에서 보행자를 위협하고, 차도에서 자동차의 위협을 받았다.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이르면 올 12월부터 안전 규정의 준수를 전제로 자전거도로를 이용할 권리가 생겼다.

법률의 개정은 도시의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 도시는 또 한번 자가용 승용차 중심의 교통체계를 벗어날 기회를 맞게 됐다. 자전거와 개인형 이동장치가 함께 하는 지금의 상황은 15년 전보다 훨씬 낫다. 이제 자전거와 개인형 이동장치가 다니는 길이 도시 곳곳에 만들어질 것이다. 어디에 만들어야 할까? 자전거의 실패를 곱씹어야 한다.

최성용 작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