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국가보안법(보안법)’을 제정하려는 중국 정부 발표로 불거진 반중(反中) 시위가 충돌ㆍ폭력으로 얼룩진 지난해 ‘범죄 인도 법안(송환법)’ 사태를 닮아 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위험에도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위대는 “결사 항전”을 외치고, 이에 맞선 치안당국도 시위를 “테러리즘”으로 규정하며 강경 진압을 공언하고 있다.
존리 홍콩 치안장관은 25일 성명을 통해 “홍콩 내 ‘테러리즘’이 확산하고 독립 주장 등 국가안보를 해치는 활동도 점점 만연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주말 열린 도심 시위의 폭력성을 부각하면서 테러로 못박은 것이다. 그는 이어 “도시의 번영과 안정을 지키기 위해 보안법은 필요하다”며 홍콩 의회를 대신해 직접 법 제정에 나선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두둔했다.
전날 오후 수천 명의 시위대는 시내 중심가에 모여 보안법 반대 시위를 강행했다. 이에 시위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한 홍콩 경찰은 초반부터 최루탄과 물대포를 동원해 강제 해산에 나섰고, 시위대도 벽돌·유리병 등을 던지며 격렬히 맞섰다. 경찰은 일부 과격 시위대가 신호등을 부수기도 했다고 주장하면서 200여명의 시민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앞서 22일 중국 의회 격인 전인대는 국가 전복, 테러리즘 활동 등을 금지ㆍ처벌하는 내용의 보안법 초안을 공개했다. 홍콩 범민주 진영은 즉각 보안법이 홍콩 자치권을 보장한 일국양제(一國兩制ㆍ한 국가 두 체제) 원칙에 위배될뿐더러 민주 인사들을 탄압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며 강경 투쟁을 예고했다. 전날 시위에서도 ‘하늘이 중국 공산당을 멸할 것이다’ ‘홍콩인이여 복수하라’ ‘홍콩 독립만이 살길이다’ 등 중국 정부를 맹비난하는 격한 구호가 난무했다.
시위 첫날부터 폭력 양상이 뚜렷했다. 이날 한 변호사가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와 언쟁을 벌이다 구타를 당해 다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홍콩변호사협회 측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을 침묵시키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면서 “만일 이런 자유를 두고 사람들이 투쟁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홍콩의 슬픔”이라고 비판했다.
중국과 홍콩 당국은 이런 물리적 충돌 분위기를 교묘히 활용해 보안법 당위성을 홍보하고 있다. 렁춘잉(梁振英) 전 홍콩 행정장관은 페이스북에 “해당 변호사를 공격한 ‘폭도’들을 잡는 데 도움이 되는 제보를 한 사람에게 30만홍콩달러(약 4,800만원)를 주겠다”며 현상금을 내걸기도 했다. 그는 다른 게시물에서는 “보안법은 구제가 불가능한 소수의 사람만 겨냥한 법”이라고 적극 옹호했다. 리잔수(栗戰書) 전인대 상무위원장도 이날 “보안법은 헌법과 기본법이 정한 특별행정구(홍콩)의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중대 조치”라며 제정 강행 의지를 재차 피력했다.
반면 범민주 진영은 ‘보안법은 송환법보다 악법’이란 논리를 내세워 수용 불가 입장을 굳건히 하고 있다. 지난해 송환법 시위를 주도한 민간인권전선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지난 1년간 우리 200만명의 형제ㆍ자매들은 피땀으로 최루탄을 이겨내고 의지로 총알에 저항했다”면서 “이번이 홍콩인들의 마지막 혁명이 될 수 있다”고 시위를 독려했다. 외신에 따르면 전인대는 회기 마지막 날인 28일 보안법 제정 여부를 표결할 예정이어서 이에 맞춰 홍콩 내부의 반발 수위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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