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 칼럼] 국익을 해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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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 국익을 해치는 사람들

입력
2020.05.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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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 규명 美백악관 청원 15만 넘어

한미 방위비 무리한 요구에도 수용 주장

중국은 물론 미국에도 당당히 할말 해야

지난 18일 오후 서울 미국대사관 앞에서 '미국은 들어라' 시민행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시민ㆍ사회단체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15개 단체가 함께한 시민행동은 기자회견에서 불공정한 한미관계 개선을 촉구했다.

2010년 위키리크스 폭로로 알려진 직전 4년간의 주한 미대사관 전문(電文)에는 한국 정보원들의 실상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한 예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은 한국갤럽 회장 재직 당시인 1997년 12월 대선 일주일 전에 보스워스 주한 미대사를 만나 공표 금지 기간 중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알려줬다. 최 위원장은 지속적으로 대사관과 접촉해 미국으로부터 ‘오랜 정보원’으로 불렸다.

당시 공개된 1,980건의 주한 미대사관 전문에는 소속 기관에 따라 ‘청와대 정보원’ ‘외교통상부 정보원’ ‘국회 정보원’ 등으로 분류돼 있고, 활용 정도에 따라 ‘보통 정보원’ ‘접촉 빈도 높은 정보원’ ‘오랜 정보원’ ‘믿을 만한 정보원’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특정 조직의 내부 정보나 동향을 파악할 목적으로 구축된 관계임을 짐작하게 한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 부처와 정당, 학계, 기업 등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주한 미대사관의 ‘정보원’들이 포진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미국 편에 서서 정보를 건네주는 배경에는 미국을 절대적 존재로 추앙하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한 전문에서 미국이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고 진정한 슈퍼파워와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에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 쓴 것도 이를 보여 준다.

4ㆍ15 총선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일부 보수 지지자들이 미국 백악관 청원사이트에 올린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이 선거를 조작했다’는 글에 동의한 사람이 15만명을 넘었다. “한국 선관위와 정부를 믿을 수 없으니 미국이 밝혀 달라”는 내용인데 청원자들은 미국의 공식 답변이 나오기만을 목매 기다리고 있다. 미국이 한국의 국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이 뿌리째 박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교착 상태에 빠진 한미 방위비 협상에서도 비슷한 시각이 드러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에 활용할 의도로 한국이 감당하기 어려운 돈을 내놓으라고 위협하고 있다. 한국을 “미국을 벗겨먹는 나라”로 몰아세우더니 급기야 주한 미군을 위해 일하는 한국인 근로자 수천 명을 실직시키며 볼모로 삼았다. 그런데도 보수 일각에서는 한미 균열을 이유로 미국의 요구를 그냥 수용하라는 주장을 편다. 미국으로서는 시간만 끌면 저절로 감이 떨어질 것이라고 여기지 않을까 싶다.

최근 남북 관계에서도 보수 진영은 한국 정부보다 미국 입장을 우선시한다. 지난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정부가 꽉 막힌 남북 관계를 풀기 위한 방안을 내놓자 목소리를 높인다. 반대 이유는 “미국보다 한 발짝도 앞서 나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미 간 소통과 협력 필요성을 모르진 않으나 반대 세력은 애초 대북 정책이 대한민국의 주권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생각이 없다.

코로나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미국은 더 이상 세계 최강의 모범국가가 아니다. 10만명에 육박하는 사망자 수는 초강대국 미국의 쇠퇴를 여실히 보여 준다. 10년 전 금융위기 때만 해도 미국은 주요 국가들과 소통하고 공동의 방안을 내는 등 리더십을 발휘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보호무역과 자국우선주의로 세계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코로나 이후다. 미국과 중국이 코로나 확산 책임론을 계기로 전면적인 대결로 치달을 위험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는 재선을 겨냥한 전략적 차원 성격이 짙지만 우리로서는 대형 악재가 아닐 수 없다. 당장 탈(脫)중국 글로벌 공급망을 목표로 한 경제연합체에 한국도 참여하라는 압박이 본격화하고 있다.

미중으로부터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에서는 국익에 바탕을 둔 균형잡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한국의 위상은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섰다. 아무리 힘이 센 미국과 중국이라도 한국을 막대할 단계는 이젠 아니다. 중국은 물론, 동맹국인 미국이라도 무리한 요구에는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굴종과 저자세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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