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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거짓에 대한 책임은 더 무거워야

입력
2020.05.26 04:30
수정
2020.05.26 09:0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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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그림1 서울 이태원 클럽을 다녀온 뒤 코로나19에 감염된 학원강사로 인해 지난 13일 인천시 미추홀구 운동장에 설치된 선별진료소에서 세움학원 수강생(138명)과 팔복교회 신도(600명)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 뉴시스
그림1 서울 이태원 클럽을 다녀온 뒤 코로나19에 감염된 학원강사로 인해 지난 13일 인천시 미추홀구 운동장에 설치된 선별진료소에서 세움학원 수강생(138명)과 팔복교회 신도(600명)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 뉴시스

“무직입니다.” 이 말이 가져올 파장을 당시 그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일상에서 격리되는, 이질적이고 두려운 상황에서 두서 없이 내뱉은 말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이틀 연속 서울 이태원 클럽을 다녀온 사실을 숨기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감춘다고 감출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후라도 즉시 바로잡았어야 했다.

조금만 더 생각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자신에게 월급을 안겨주는 학원 원장과 동료, 그곳에서 가르치던 학생들, 방문하는 날이면 차나 간식을 챙겨줬을 과외학생과 그 가족들을 한번이라도 머리 속에 떠올렸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터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숨기는 데 급급했다. ‘인천 학원강사’로 알려지면서 국민적 분노를 높인 25세 남성 A씨의 얘기다.

그가 어떤 경로를 통해 코로나19에 감염됐는지는 공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누구나 어디서나 걸릴 수 있는 게 감염병이고, 특히 코로나19는 무증상 상태에서도 전염력이 있다는 점이 증명됐으니 외려 어서 빨리 회복하라는 응원을 받았을 것이다. 손색 없는 수준의 치료체계를 갖춘 국가와 헌신적인 의료진의 도움을 받으면서.

지난 9일 인천시의 역학조사에서 A씨는 현재 하고 있는 일과 방문지역을 감췄다. 이를 의심한 방역당국은 경찰에 그의 휴대전화 위치정보 조회를 요청했고, 그 결과는 사흘이 지난 12일 나왔다. 이를 통해 확인이 들어가서야 그는 학원과 가정집을 방문했고, 택시를 탄 사실을 털어놨다. 그 사이 학원 수강생, 택시기사, 과외학생에게 바이러스는 전파됐고, 다시 수강생 가족과 친구, 과외학생 가족과 다른 과외교사, 택시기사의 손자와 아내 등으로 삽시간에 퍼졌다. 25일 낮 12시 현재 A씨를 통해 감염이 확인된 환자만도 50명 안팎이며, 6차 감염까지 확인됐다.

그의 거짓말이 불러온 소용돌이는 우리 사회와 경제를 휩쓸었다. 잡혀가던 코로나19가 다시 비상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줬다. 그가 확진 판정을 받던 날인 9일부터 이전 2주간 일일 확진자는 평균 8.7명에 그쳤다. 하루 2명과 3명의 환자만 발생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10일 이후 2주간 하루 평균 확진자는 23.2명으로 늘었다. 한시가 급한 인천 지역 66개 고교 3학년들은 등교하자마자 수업 한번 듣지 못한 채 귀가해야 했다. 그와의 접촉자, 접촉자의 접촉자를 찾고 격리하고 치료하는 데 방역자원은 낭비됐다. A씨와 그로 인한 확진자들의 동선에 포함돼 반강제적으로 문을 닫게 된 자영업자들과, 겨우 소비가 늘기 시작하면서 다시 시작해보자고 다짐한 소상공인들의 기대감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무엇보다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성공적으로 이행해 막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하며 고취된 국민들의 자긍심과 안도감이 단시간에 탄식과 두려움으로 대체됐다는 점은 안타깝다. 이 모든 결과의 책임을 오롯이 그에게 물을 수는 없겠으나, 그의 거짓으로 인한 책임이 작다고 할 순 없다. 인천시가 그를 고발하고 구상권을 청구하기로 한 것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일 것이다.

코로나19는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신종 감염병이다. 최대 2년간 지속된다는 전망도 있다. 언제일지 모를 종식 때까지 모든 활동을 멈출 수는 없다. 정부도 이런 이유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했다. 국민들이 완화된 거리두기에도 동참해 주리란 전제가 바탕이 됐다. 조심한다 해도 확진환자는 계속 나올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감염 자체는 치료 대상이다. 다른 사람에게 감염시킬 위험을 숨기는 것이 죄다. 모든 행동엔 책임이 따른다. 거짓에 대한 책임은 더 무거워야 한다. 제2의 인천 학원강사는 나오지 않아야 하니까.

이대혁 정책사회부 차장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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