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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미국과 중국, 부끄러움을 모른다

입력
2020.05.26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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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미국과 중국의 갈등과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코로나19, 홍콩보안법, 대만문제 등을 두고 양보 없는 설전을 벌이고 있다. 강대국 미국과 중국이 시정잡배와도 같은 볼썽사납고 낯뜨거운 원색적인 비방을 이어 가고 있다. 이유야 어떻든 두 나라의 원색적인 상호 비난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미국과 중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서로 힐난하고 헐뜯고 손가락질하면서 서로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세계는 코로나19로 어렵고 험난한 고통의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국제사회가 서로 협력해도 모자랄 판에 미국과 중국은 협력은커녕 흡사 파국을 향해 마주 달리는 기관차와 같다. 두 나라의 공방은 비난만 난무할 뿐 비판이 끼어들지 못해 더욱 혼란스럽고 때로는 낯설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향해 ‘제정신이 아닌(wacko)’, ‘멍청이(dope)’로,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악랄한 독재정권’으로 말 폭탄을 날렸다. 중국도 ‘인민의 지지’ 운운하면서 맞대응하고 있다. 미국은 대통령과 국무장관 등이 직접 ‘중국 때리기’ 전면에 나섰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나 왕이 외교부장이 직접 나서지 않고 외교부 대변인이 전면에 나섰다. 중국은 미국의 ‘중국 때리기’를 미국 정치 내부 문제로 본다. 외교부 대변인으로 맞대응 수준을 낮춰 사실상 무대응으로 대응하고 있다. 정치 쟁점화하려는 미국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계산이다. 미국과 중국의 상호 비난은 미국 대선이 열리는 11월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획기적인 전환점이 마련되지 않는 한 미국과 중국의 상대에 대한 비난은 계속될 것이다.

국어대사전에서 비난(非難)은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을 의미한다고 쓰여 있다. 그리고 ‘비판(批判)’은 “현상이나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함”을 의미한다고 적고 있다. 또한 비판은 “사물을 분석하여 각각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고, 전체 의미와의 관계를 분명히 하며, 그 존재의 논리적 기초를 밝히는 일”이라는 의미도 함께 부연 설명하고 있다. 중국 한어(漢語) 사전에서도 비난은 “타인의 과실을 질책함”으로, 비판은 “시시비비에 대한 판단”으로 설명하고 있다. 판단이 들어가기 때문에 비난보다는 비판이 더 어렵다, 그래서 비판이 때로는 비난에 비해서 귀찮을 수도 있다. 비판은 비난에 비해서 한층 깊은 사고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비판은 철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가치, 관계, 존재 측면에서 훨씬 중요하다. 인간의 사고를 한층 더 깊게 하고, 문제의 해결을 더디지만 올바르게 안내해 준다. 따라서 비판은 타인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신뢰에 기초해서 이루어질 때 참 의미를 갖는다. 비판이 비난보다 더 어려우면서도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비판은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남을 배려하거나 애정을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난은 사실상 자기만족적인 일종의 배설의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비판은 관계의 의미 때문에 쉽게 하기 어렵다. 상대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난은 일차원적이고 비판은 삼차원적이다. 그리고 비난은 자기 만족적이고 자위적이다. 하지만 비판은 상대를 배려해야 하기 때문에 ‘빙의’가 필요하다. 비난에는 애정과 신뢰가 담겨있지 않지만 비판은 이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말 폭탄은 사실상 비난에 가깝다. 관계적 의미를 찾을 수 없고, 상대를 고려하고 이해하는 전제 위에서 하는 것도 아니다. 애정과 신뢰가 수반되지 않기에 말초적이고 원색적이다. 상대방을 헤아리지도 않기에 부끄럽기까지 하다. 옛말에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羞惡之心)이 없으면 짐승이라고 했다. 미국과 중국은 모두 원색적 비난이 아닌 건전한 비판에 나서주기 바란다. 부끄러움을 아는 진정한 문화 국민의 바람이다.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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