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핵 증강 야욕을 거침 없이 발산하고 있다. 연초 내놓은 내년 예산안에서부터 핵무기 확대 의지를 노골화하더니 잇단 군축조약 탈퇴에 더해 이번엔 28년 만에 핵실험 재개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 러시아 탓을 하고 있지만 결국 미중 신(新)냉전 국면에 이은 ‘신 군비경쟁’이란 비판을 면치 못할 전망이다.
23일(현지시간) 일간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이달 15일 미 국가 안보기관 수장들이 모인 회의에서 1992년 이후 중단된 핵실험 재개 문제가 논의됐다고 한다. 최근 불거진 중ㆍ러의 ‘저위력 핵실험’설에 대한 대응 방안이 의제에 오른 자리였다. 펄펄 뛰며 핵실험설을 부인하는 중ㆍ러와 달리 미 행정부는 이를 기정사실로 여기고 경고 메시지로 핵실험 재개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핵실험을 다시 하면 핵무기 감축을 위한 협상 테이블에 두 나라를 앉히는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런 카드는 21일 미국의 항공자유화조약(OST) 탈퇴 선언과 맞물려 국제사회에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34개 회원국 간 상호 자유로운 비무장 공중정찰을 허용하는 OST는 우발적 충돌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에 이어 러시아까지 탈퇴할 경우 글로벌 정세의 불안정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이란 핵합의(JCPOAㆍ포괄적 공동행동계획)와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 이탈한 전력이 있다. 핵전력 확산을 위한 자물쇠를 하나씩 풀어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미 ‘최고 핵강대국 지위’를 유지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노림수는 2월 핵전력 현대화를 위한 국방부 예산을 전년보다 18% 늘린 2021 회계연도 예산안에서도 확인됐다.
물론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해당 보도와 관련한 논평을 거부했다. 하지만 미국의 핵실험 재개는 글로벌 군비경쟁의 불씨가 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핵실험이 중ㆍ러에 대한 압박용이라는 설명에 대해서도 “위험한 책략(대릴 킴볼 미 군비통제협회 사무국장)”이란 게 중론이다. 한스 크리스텐스 미국과학자연맹 핵정보 프로젝트 책임자는 비즈니스인사이더에 “제정신인 사람들이 어떻게 (핵실험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안보상 이익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느냐”면서 “중국과 다른 모든 핵무장 국가들도 핵실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일련의 행보를 보면 내년 2월 만료를 앞둔 미국과 러시아의 핵무기 감축 협정,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ㆍ뉴스타트)은 파기될 게 확실하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까지 포함한 협정을 요구하고 있어 순탄한 합의가 어려운 상황이다. 안보 전문가들은 뉴스타트의 종식을 핵 억제 균형을 무너뜨리는 ‘화룡점정’으로 보고 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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