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선·신기욱 ‘포스트 코로나’ 화상 대담
“미래 생존 싸움… 한국, 전략적 고민 절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와중에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전면화하고 있다. 어렵게 도달한 1단계 무역합의가 무색하리만큼 경제ㆍ무역ㆍ외교안보ㆍ군사ㆍ인권 등을 망라한 가히 전방위 정면충돌 양상이다.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과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한 목소리로 “이제 미중 갈등은 ‘상수’”라며 한국 정부에 전략적 고민을 주문했다.
하 이사장과 신 교수는 지난 18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주제로 한 화상대담에서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미국의 대중 압박은 지속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신 교수는 “지금의 미중 갈등은 ‘미래’를 좌우할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어서 민주당도 강경하게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하 이사장도 “기술ㆍ혁신분야에서 주도권을 상실하면 전반적인 국가 위상이 하락할 것으로 우려하는 만큼 이를 둘러싼 경쟁은 생존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중 정책노선에 있어서는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사실상 그의 맞수로 확정된 조 바이든 전 부통령 간 차이가 크지 않다는 얘기다.
미중 갈등이 ‘신냉전’ 체제로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한국엔 ‘너트크래커(Nutcrackerㆍ호두 까는 도구)’ 사이에 낀 호두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한 전략적 고민이 절실해졌다. 경제ㆍ무역분야나 외교안보ㆍ군사분야 등에서 미중 양국으로부터 사안에 따라 택일을 강요받을 개연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어서다. 자칫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사태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하 이사장은 “미중 양국의 충돌이 전면화하는 상황에서는 동맹이든 우호국이든 지리적 인접국가든 상대적으로 국력이 작은 나라들은 굉장한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신 교수는 “경우에 따라선 삼성이 미국과 중국 간 택일을 고민해야 할 수도 있다”면서 “지금부터라도 전략적으로 고민하고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엄청난 위기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은 대담 내용 요약.
_‘코로나 사태’에 대한 한국과 미국 정부의 대응을 평가하면서 코로나19 위기에 대한 접근법을 고민해봤으면 한다.
하영선 이사장(이하 하)= 단기적으로 방역 문제이지만, 중기적으로는 정치ㆍ경제 문제가 있고 장기적으로는 생태ㆍ문명사적 의미가 있다. 굉장히 ‘탈근대적인’ 코로나19 위기에 ‘근대적인’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 아닌지도 생각해볼 지점이다.
신기욱 교수(이하 신)= 코로나19 문제가 다양한 층위를 갖는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방역 측면에서 한국은 중앙정부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대응한 반면 미국의 대응은 혼란스럽다. 한국은 초기 방역에 엄청난 자원을 동원했는데 계속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장기 대응 모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_권위주의적인 아시아 모델과 개인의 권리를 중시해온 서구 모델이 비교되는데.
신= 한국은 확진자 동선 추적에 신용카드 사용 내역, 휴대폰 통신기록 등을 확인하고 경찰도 동원한다. 방역에는 성공했지만 자유ㆍ인권 등의 가치가 훼손된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하= 이분법적으로 볼 문제가 아니다. 1단계 방역에서 일정한 차별화가 이뤄진 건 분명하지만 보건의료 분야만 해도 백신 개발 능력 등에서 여전히 북미나 유럽의 축적된 기반이 훨씬 탄탄하다. 이를 정치ㆍ경제 문제, 글로벌 리더십, 나아가 생태ㆍ문명의 문제로까지 확장하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_글로벌 거버넌스가 제 역할을 못하고 갈등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이 많다.
신= 근래 세계화에 대한 반격이 있어 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등이 대표적이다. 코로나 사태가 보수주의적 포퓰리즘을 가속화한 측면이 있다. 2008년 금융위기만 해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제도화 등 글로벌 협력이 활발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완전한 각자도생이자 갈등으로 가고 있다.
하= 일각에서 코로나 사태를 ‘세계화에 대한 경종’으로 해석하며 세계화의 축소와 위기를 예상한다. 하지만 코로나를 막으려면 역설적으로 국수주의적 시각을 넘어서야 한다. ‘제대로 된 세계화’로 가자는 리더십이 힘을 얻어야 한다.
_전 세계가 미국 대선을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하= 미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든 리더십 문제는 큰 숙제다. 11월 대선을 한달 가량 앞둔 시점에서 특히 경제 상황이 중요하다. 코로나가 잡히고 반등까지는 아니라도 경제가 회복세라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있다. 사실 우리 입장에선 미 대선 이후 미중관계와 한미동맹이 어떤 모습일지가 중요하다.
신= 바이든 전 부통령도 대중 정책에선 트럼프 대통령과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양측 모두 중국이 국제무역에서 과도하게 이익을 본다고 인식한다. 동맹관계는 대선 결과에 따라 어느 정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처럼 일방통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_미중 갈등이 상당 기간 지속된다면 국제사회의 협력이 불가능한 구도가 사실상 고착화하는 건가.
하= 최근의 미중관계를 ‘코로나 냉전’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2050년까지는 군사적 비대칭성이 지속될 것이다. 그런데 경제 분야는 다르다. 이미 국내총생산(GDP) 격차가 꽤 좁혀져 있어 일방적일 수 없다. 따라서 당장은 그보다 덜 위험한 부분에서 갈등이 분출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미중 모두에게 마이너스이고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면 코로나 사태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동맹관계도 마찬가지다. 미국 우선주의가 단기적으로는 플러스일지 몰라도 미국이 세계 질서를 운용하면서 누린 이익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신= 미국의 헤게모니는 2차 대전 이후 세 번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소련, 일본, 중국이다. 미소는 정치ㆍ군사관계였고, 미일은 무역ㆍ경제관계였다. 그런데 미중관계는 그게 다 얽혀 있다. 특히 기술 문제는 제로섬 성격이 강하다. 5G나 플랫폼 경쟁은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이 걸린 만큼 타협이 쉽지 않다. 바이든 전 부통령도 강경하게 대처할 가능성이 높다. 11월 대선 이후에도 미중 간 ‘전쟁’이 계속 될 거라고 보는 이유다.
하= 미국 우선주의는 중국이 글로벌 리더로 부상하는 데 있어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그러나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사실상 ‘중국 우선주의’여서 매력적인 리더십 모델이 되기 어렵다. 이 점에서 미국 내 논의가 여전히 미국이 계속 주도권을 행사할지, 중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갈지, 미중 모두 인정받지 못하는 무정부 상태가 될지 등에 국한되고 있는 건 안타깝다.
_미국은 갈수록 경제ㆍ무역 문제도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루는 듯하다.
신= 지금의 글로벌 공급망에는 중국이 깊이 얽혀 있는데 미국은 이걸 끊으려 한다. 화웨이의 경우만 해도 대중 압박에 이어 동맹ㆍ우호국에게도 거래하지 말라고 한다. 중국뿐 아니라 동맹국들에게도 상당한 압박이다. 경우에 따라선 삼성이 미중 간 택일을 고민해야 할 수도 있다.
하= 한국ㆍ미국ㆍ중국ㆍ일본 등이 담론 차원에서라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미중 양국의 충돌이 전방위로 확대되면 동맹이든 우호국이든 지리적 인접국가든 상대적으로 국력이 적은 나라들은 굉장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신=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복귀)만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경제적으로는 말이 안 된다. 지금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조금씩 이뤄지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미중이 별도의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 4분기까지 글로벌 경기 상황이 계속 나빠질 거란 예상이 나오는데 하향 국면에서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느냐가 중요하다. 각자도생으로 가면 대공황 전후보다 훨씬 더 어려워질 수 있다.
_이런 상황은 한국 정부에도 메시지가 될 것 같은데.
신= 최근 ‘한국판 뉴딜’을 얘기하는데 규제 혁신이나 고용보험 확대 등은 사실 지엽적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한 고민과 준비가 없으면 엄청난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지금 방역 성과와 관련해 K-모델을 앞세우는 걸 보면 답답하다.
하= 한국의 방역 성과에 전 세계가 관심을 보이는 건 의미가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세계를 선도하려면 방역ㆍ경제ㆍ글로벌 리더십 등에서 모두 치밀하고 엄정한 모델링을 해야 한다.
_코로나 사태가 무한경쟁과 이윤추구에 매몰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경종을 울렸다는 지적도 있다.
하= 신자유주의가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의문이 있다고 해서 신중상주의로 회귀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과거를 넘어서는 복합적인 새 모델의 구상이 필요하다. 이것이 코로나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신= 사실 코로나는 언젠가는 현실이 될 일을 가속화한 측면이 있다. 화상회의나 재택근무, 오프라인 유명 백화점들의 파산 등이 그렇다. 글로벌 거버넌스도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리더십 관련 논의를 촉진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당장은 혼란스럽지만 잘 관리하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글로벌 협력이 중요하다.
진행=양정대 국제부장 torch@hankookilbo.com
정리=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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