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음악을 좋아한다. 모임에서는 노래가 빠질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음악이 인기를 얻고 상을 타는 것을 보면 타고난 재능도 있는 것 같다. 요즘 방송에서는 각종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 인기다. 트로트ㆍ성악ㆍ가요 등 장르도 다양하다. 좋은 음악은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정서적으로 기쁨을 주고 슬픔과 고통을 위로해 주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소리를 듣는 것’에 불편을 느끼기도 한다. 청각 장애가 있어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나이가 들어 난청이 생기기도 한다. 없는 소리가 들리거나 소리에 지나치게 예민한 경우도 있다.
이명(tinnitus)은 ‘외부에서의 자극 없이 소리를 느끼는 것’으로 정의된다. 귀와 연결된 기관과 근육, 신경 등 머리 내부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 증상이다. 얘기하는 소리가 아니고 일종의 신호음처럼 들린다. 이명은 청력 저하와 관련될 때도 있다. 그러나 소리를 듣는 안쪽 귀의 기관, 청신경의 손상보다는 오히려 소리를 인식하는 대뇌의 중추신경과 관련이 있다. 일반인이어도 이명이 20~30%까지 나타난다고 보고되고 있다. 이명은 자신의 의지로 제어되지 않는다. 아직 그 원인을 알 수 없고 이명이 심해짐에 따라 우울증ㆍ불면증이 동반될 때가 많다.
빗방울 하나의 소리도 곤충에게는 천둥 소리같이 들릴 수 있다. 신경이 예민한 사람은 아주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청각과민증(hyperacusis)은 정상적인 환경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청력 역치가 감소한 것이다.
낮은 소리에도 고통과 불편감을 호소하고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다. 정서적 충격과 관련된 소리나 큰소리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심하면 직장과 일상생활에서 불편해진다. 이명과 청각과민증이 같이 나타날 때도 많다.
실제 없는 소리를 듣는 환청(hallucination)은 특히 정신병적 증상이 있는 정신질환에서 종종 나타난다. 일시적이기도 하고 지속적이기도 한데 대개 비난하는 소리, 간섭하는 소리 등 괴롭히는 소리일 때가 많아 환자를 고통스럽게 한다. 측두엽 간질(temporal lobe epilepsy) 환자에서도 이런 환청이 들리기도 한다. 이명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지로 제어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정신병적 증상보다는 비교적 항정신병약물로 잘 조절되는 증상이기도 하다.
모든 감각이 그렇듯이 소리도 객관적인 요소와 주관적인 요소가 있다. 듣는 사람의 심리 상태나 환경 영향을 받는다. 고함 소리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면 괴로운 소리가 되기도 하지만 운동 경기에서 응원할 때 다같이 지르는 함성은 기쁨의 소리가 되기도 한다.
이명과 청각과민증 같은 이비인후과적 증상의 주원인은 중추신경에 있다. 같은 소리를 무덤덤하게 즐겁게 또는 고통스럽게 느끼는 것은 대뇌에서 그 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다. 대뇌 상태에 따라 같은 소리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반대로 이러한 증상이 지속되면 불면증ㆍ불안증ㆍ우울증 같은 정신적 증상이 자주 동반된다. 그래서 치료에 항우울제ㆍ항불안제 등의 약물이 종종 처방되고 실제로 효과도 있다. 우울증ㆍ불안증에 많이 쓰이는 인지행동치료도 도움이 된다.
다른 신체질환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는 소리에 대한 이상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뇌신경은 근육이나 힘줄이 쉬는 것처럼 혹사당하지 않게 그때그때 잘 쉬는 것이 필요하다. 적당한 휴식은 몸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마음이 편안해야 세상의 소리도 잘 들린다.
어떤 사람은 소리를 못 들어서 괴롭고 어떤 사람은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계속 들려서 괴롭다. 어쩌면 요즘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 인기를 모으는 것은 사람들이 세상 소리에 지쳤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 계곡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 잔잔한 파도소리 같은 넓은 음폭을 갖는 자연의 백색 소음(white noise)은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된다. 아름다운 소리를 느끼고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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