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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성공 이면의 그늘, 국가의 ‘감시 권력’을 따져 물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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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성공 이면의 그늘, 국가의 ‘감시 권력’을 따져 물어야”

입력
2020.05.25 04:4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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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 교수 인터뷰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 교수가 20일 서울 안암 연구실에서 코로나19 사태에서 불거진 사회적 약자와 혐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 교수가 20일 서울 안암 연구실에서 코로나19 사태에서 불거진 사회적 약자와 혐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 교수는 인터뷰 동안 답변보다 외려 질문을 많이 던졌다.

“현실에서의 많은 질문들은 수학 문제처럼 답이 딱 떨어져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오히려 판에 박힌 답은 질문을 사라지게 만들죠. 질문을 품고 있는 시간들이 길어질수록 답은 달라질 수 있어요. 질문이 주는 긴장감을 갖고 우리 사회의 문제를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여전히 현재진행 중인 코로나19 사태를 진단하고 예측하는 건 연구자에게도 쉽지 않은 일.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게 지상과제가 된 시대에서, 우리는 어떤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20일 서울 안암동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나 들어봤다.

김 교수는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이란 생소한 프리즘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건강 실태를 연구해 온 스타 학자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 등등의 저서를 통해선 질병의 사회구조적 문제와 책임을 환기시켰다.

 -코로나 19 사태가 끝날 듯 끝나지 않는다. 

“2020년에도 안 끝날 것 같다. 한국에서 일일 신규 확진자가 사라지는 상황이라고 해도, 남미나 아프리카에서 환자가 계속 발생하는 한 안심할 수 없다.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구의 50% 이상이 항체를 가졌을 때 확산을 멈출 수 있다고 추정되고 치사율은 낮게 잡아서 2%인데, 이게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5,000만명 인구로 환산하면 코로나19로 인해 50만명 이상이 사망해야 집단면역이 생긴다. 우리 사회에서 암, 교통사고, 자살을 포함한 총 사망자 수가 2018년 한 해 동안 30만명 가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재앙에 가까운 숫자다.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임상시험을 감안하면 빨라야 18개월 이후이고, 역사상 제일 빨리 개발된 백신도 4년 걸렸다. 몇 개월 버티고 끝날 상황이 아니다. 진짜 어려운 판이다.”

 -그래도 한국은 잘 버텨오고 있지 않나. ‘K-방역’의 힘인가. 

“시민의 협조와 의료진의 헌신으로 힘겹게, 잘 견디고 있다. 정부 대응과 관련해 높게 평가하는 지점 중 하나는 코로나19 유행 초기에 사태 규모를 숨기거나 축소시키려 들지 않았다는 거다. 많은 경우 재난이 발생하면 행정 책임자는 그 규모를 축소하려고 든다. 책임을 피하고 싶으니까. 코로나19 유행 초기 트럼프 대통령은 일시적으로 지나갈 별것 아닌 사건처럼 말했었고, 아베 정부가 보고하는 확진자 숫자를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결과를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측정이 틀리면 대책은 있을 수 없다. 다행히도 한국 정부는 사태 초기부터 투명하게 확진자 숫자를 공개했다. 중요한 선거를 앞뒀던 시기에 정부가 그러한 결정을 내렸던 점은 좌우를 떠나 인정했으면 한다.”

문제는 이게 한 두 달 안에 끝날 사안이 아니라는 것. 김 교수는 코로나19 장기화에 대비해 방역 성공 이면에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그늘’은 없는지 돌아볼 때라고 강조했다.

당장 확진자의 24시간 동선을 공개하고, 접촉 의심 대상자의 전화번호를 모두 입수해 개별 연락을 취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됐다. 이 모든 일은 대한민국에서 합법이며, 국민들 역시 코로나19 차단을 위해서 불가피한 일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김 교수는 되묻는다. 일시적 위기 상황이라면 모를까, 이게 코로나 이후 시대 뉴 노멀로 자리잡게 된다면. 국가가 계속 이러한 합법적 권리를 갖는 게 온당한 것인가. 김 교수는 방역이 절대선이라는 강박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지금 비상사태라는 점에서 이 같은 국가 권력을 용인하고 있다. 나와 내 가족이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국가 권력이 감염병 의심자라는 이름으로 모든 개인의 24시간을 합법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상황이 뉴 노멀로 자리 잡게 된다면? 우리는 그러한 세계를 용납할 수 있는가,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언론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를 지켜내며, 자기 삶의 주인인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열리는 상황이다. 현재는 방역이라는 ‘절대선’ 앞에 국가의 거대한 감시권력이 용인되고 있지만, 국가 권력이 반드시 선의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개인 인권이냐, 공공의 가치냐 어떤 걸 우선시할지 헷갈린다. 

“그렇게 추상적 논쟁으로 가면, 의미 있는 논의가 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인권과 방역을 붙여 놓으면, 아직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알 권리는 어떻게 보장할 것이냐는 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빅 브라더의 시대가 왔다’는 공포 가득한 레토릭으로 싱겁게 결론 내서도 안 된다. 논쟁은 구체적으로 가야 한다. 지자체들은 경쟁적으로 동선 공개에 열을 올린다. 바로 옆 지역에서는 확진자의 모든 동선을 공개하는 상황에서, 구청장은 다음 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무책임하고 게으른 행정가로 찍히는 일은 어떻게든 피하려 애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방문했던 장소와 시간을 넘어선, 확진자의 성별, 나이, 동선 공개와 같은 정보는 방역에 불필요할뿐더러, 그 정보공개가 두려워 검사에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 방역이 외려 방해가 된다. 선거에 영향을 받는 지자체를 넘어선 윗선에서 과학적 근거에 따라 정치적으로 명확히 정리해 주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재난의 희생양을 찾으려는 시도도 빈번했다. 

“중국 동포, 신천지, 대구, 이태원 클럽으로 성소수자까지. 낙인의 문제는 그 나라의 권력 관계를 반영한다. 성소수자가 타깃이 됐던 건, 성소수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혐오 권력이 그만큼 공고했기 때문일 거다. OECD 국가 중 ‘동성애자를 이웃으로 두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국가가 터키 다음으로 한국이다. 한국은 동성간 성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한 군 형법과 동성 파트너를 인정하지 않는 법 체계를 가지고 있다. 또 반동성애를 외치며 지지기반을 확대해 나가는 종교 세력이 있고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그들의 눈치를 살피는 나라다. 성소수자 스스로도 이 같은 차별을 내재화했고, 낙인은 안팎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하지만 이번 이태원 클럽 확진자 사건 이후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이 우려했던 것보다는 적었다고 보는데, 그건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낙인으로 인해 그들이 숨게 되면 방역에 차질이 생기는 걸 우려해서였다.”

 -코로나19사태는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들춰냈다. 

“사회적 약자가 재난에 더 취약하다는 건 사실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이번엔 한국 사회에서 어떤 사람들이 더 자주 바이러스에 노출이 되고, 더 병원에 가기 어렵고, 더 많이 죽게 되는지 그 과정을 상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상황이다. 대인 접촉이 빈번한 서비스직, 돌봄 노동에 종사하는 저소득층 여성 노동자가 노출 가능성이 높았고, 집단별로 보자면 시설 수용 장애인분들과 요양병원에 있는 노인 분들이 취약했다. 비위생적인 공간에서 단체 생활을 하면서도 외출은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타깃이 됐다. 단기적 행정 대응을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가장 약한 고리가 무엇이었는지 재난 속에서 그 고리가 어떻게 끊어지는지 계속 들여다보며 보완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어떤 형태의 재난이 언제 터질지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돌이켜보면, 세월호 참사 발생을 누구도 예측할 수는 없었고, 코로나19도 그러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불확실성 앞에서 한국 사회 자체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가장 크게 피해를 입는 이들의 삶에 주목해 약한 고리를 보완해야 한다. 기본소득이나 전 국민 고용보험과 같은 논의가 더욱 적극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란다.”

 -드러나지 않은 약자들도 많다. 당장 재난지원금 수급 대상에서 이주노동자는 빠졌는데. 

“상징적인 장면이다. 한국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이 검사를 받도록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동시에, 재난 지원금 수령 대상에서는 그들을 배제했다. 상대적으로 전향적인 경기도의 경우에도 결혼이민자와 영주권자는 포함되지만 이주노동자는 한국정부의 허가를 받아 일하며 세금을 충실히 내고 있는 경우에도 배제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사람들은 ‘감염되어 죽거나 굶어 죽는다’라고들 표현하는데,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전자는 어떻게든 막아야 하지만 후자는 방치되는 상황이다. 그러한 정책 뒤에는 이주노동자들이 감염되면 방역에 구멍이 생겨 내 생명도 위험해지지만, 그들이 일하지 못해 굶어 죽는다고 해서 ‘한국인’인 ‘우리’는 피해를 보지는 않는다는 잔인한 통찰이 전제되어 있다. 제한된 자원으로 누구를 먼저 돌봐야 하는지, 지원금 수령자격은 무엇인지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국가의 돈으로 검사를 해주되 생활비는 지원해주지 않는 이 정책이 가진 함의는 분명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지만, 그 깨달음은 절대선인 방역의 측면에 국한되어 있지 인권과 생존의 문제로까지 확장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더욱, 방역을 진행하는 동시에 예민하고 절박한 문제를 계속 물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더 많이 필요하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임수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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