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역대 두 번째로 초선 많아
여야 모두에 초선은 중요한 개혁 동력
국민의 요구, 시대적 과제 외면 말아야
얼마 전, 21대 국회 초선 당선자들만 모인 의정연찬회가 열렸다. 국회 운영 전반과 지원 제도 등을 소개하는, 학교로 치면 입학을 앞두고 벌이는 학교설명회 같은 행사다. 새 국회 개원을 앞두고 늘 있는 일이지만 연찬회 프로그램의 시작이었던 특강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한 “오늘을, 초심을, 국회의원이 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잊지 말라”는 조언이 던지는 울림은 예전과 달랐다.
21대 국회는 초선 의원이 전체 300명 중 151명으로 절반을 넘는다. 20대 국회보다 19명이 더 많고 역대 국회를 통틀어도 17대(62.5%) 다음으로 높은 비율이다. 노무현 정부 출범 후 1년 만에 치러진 17대 총선은 노무현 탄핵 역풍으로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압승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청와대와 목소리를 같이하는 여당 초선 108명의 등장은 뒤에 여당 분열의 화근이 되긴 했지만 3김 시대가 막을 내리고 한국 정치가 새로운 문법을 써가야 하는 시대 분위기의 산물이기도 했다.
16년 만의 이번 초선 약진이 어떤 시대적 과제와 연관된 것인지 지금 뚜렷이 알기는 어렵다. 다만 여야 모두 공천 과정에서 어느 때보다 중진ㆍ현역 물갈이론이 거셌고, 그것이 초선 과반수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은 분명하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미증유의 사건을 겪은 우리 정치가 내부에서부터 다시 새로운 문법을 써야 한다는 자각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구태에서 헤어나지 못하다 결국 총선에서 참패하고만 제1야당에 초선의 역할은 존폐와 직결된 문제다. 최근 미래통합당 ‘총선 평가 세미나’에서 한 토론자는 통합당의 이미지를 “막말, 꼰대, 꼴통, 낡음, 적폐, 호통, 수구, 극우, 친일”로 표현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공공과 선을 추구한다는 인상을 준다면 통합당은 “반공, 권위주의, 성장주의, 엘리트주의, 부자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진작부터 안팎에서 통합당의 과제라고 했던 “국민을 통합하고 외연을 확장하려는 포용적 자세”로의 탈바꿈을 사실상 초선이 짊어졌다고 할 수 있다.
통합당만큼은 아니어도 여당도 초선의 역할이 중요하긴 마찬가지다. 당의 중진들이 우선 경계하는 것은 열린우리당 실패의 경험인 듯하다. 숫자에서 압도하는 초선 그룹이 당 중진과 갈등하며 개혁 입법에 실패하다 결국 당은 쪼개졌고 정권까지 잃었다. 이해찬 대표가 이번 총선 뒤 초선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교훈을 “국민이 원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 생각만 밀어붙였다” “일의 선후와 경중과 완급을 따지지 않았고 정부와 당보다는 나 자신을 내세웠다”고 요약했다.
개혁을 앞세울지, 국민통합이나 원내 타협을 우선할지는 다수 여당이 늘 안아야 하는 숙제다. 의석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책임도, 고민도 깊어지기 마련이다. 당내 분란은 적을수록 좋은 것이고 야당과도 적당히 타협하며 해나가야겠지만 그렇다고 민의의 대변자로서 역사적 소명을, 적어도 초선이라면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도 회자되는 노무현 대통령 동영상 중 부산 동구에서 첫 당선한 그가 13대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정부 질문하는 장면이 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거 입는 거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신명 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보다 세상이 많이 나아지긴 했다. 그래서 노무현이 꾸었던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이 느리긴 하지만 조금씩 실현돼 가고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의 상당 부분은 오래전부터 늘 그런 꿈을 꾸면서, 비록 초선이지만 당당하게 그 당연한 꿈을 국회에서 말할 수 있는 노무현 같은 의원들에게 빚진 것이다. 분하고 서러워 스스로 목숨 끊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그의 바람은 지금도 유효하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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