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당일 간호일지 뒤늦게 확인, 기부약정서 조작 의혹 재부상 
 공증 안 거쳐 논란 일었지만 대법 판결로 1억5800만원 가져가 
안부 피해자인 고 배춘희 할머니 이름으로 작성된 기부약정서. 나눔의집 내부고발 직원 제공

후원금 유용이 드러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주거복지시설인 나눔의집에서 2014년 6월 사망한 배춘희 할머니의 ‘기부약정서’ 조작 의혹이 다시 커지고 있다. 대법원 판결이 난 사안이지만 기부약정서가 작성된 날 배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내용이 기록된 간호일지가 뒤늦게 확인됐기 때문이다.

22일 나눔의집 내부고발 직원들에 따르면 배 할머니의 기부약정서는 2014년 4월 10일 작성됐다. 이 약정서는 전 재산을 나눔의집에 기부하겠다는 사실상의 유언장이다. A4 용지 한 장짜리 약정서에는 ‘본인의 전 재산(예금통장, 적금통장, 현금, 생활용품, 기타)을 나눔의집에 전액 기부합니다’라는 문구 아래 배 할머니 이름이 한자로 새겨진 도장과 나눔의집 대표 직인이 찍혀있다.

나눔의집은 배 할머니 사망 이후 기부약정서를 들고 농협을 찾아가 배 할머니의 재산을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농협은 “기부약정서가 컴퓨터 워드로 작성해 인쇄 후 도장만 찍은 거라 본인이 직접 날인한 것인지 객관적으로 확인이 안 된다”며 지급을 거부했다. 또 농협은 “기부를 자주 받는 기관이 무상기부약정서처럼 중요한 서류를 이렇게 허술하게 작성했다는 걸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에 나눔의집은 배 할머니의 상속인 52명을 상대로 채권양도통지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에서 승소해 지난해 1월 할머니의 전 재산 1억5,800여만원을 가져갔다.

직원들은 마무리가 된 사건으로 여겼지만 최근 과거 기록 정리 과정에서 재판에서 다뤄지지 않은 간호일지를 발견했다. 당시 담당 간호사가 작성한 간호일지에는 기부약정서가 작성된 4월 10일에 ‘OO님 때문에 마음이 상하셔서 병원에 가보신다고 하여 목욕하시고 근처 OO요양병원에 입원하심’이라고 적혀 있다. 직원들은 이날 119구급차를 불러 배 할머니가 입원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런 날에 기부약정서를 작성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것이다. 내부고발자인 김대월 나눔의집 학예실장은 “직원과 간호사를 비롯해 어느 누구도 할머니로부터 기부하겠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할머니의 도장이 당시 사무국장 책상에서 나온 것도 수상쩍다”고 말했다.

게다가 배 할머니 기부약정서는 공증도 이뤄지지 않았다. 나눔의집 운영규정에는 시설에 머무는 사람이 유서 등을 남기려면 변호사를 통해 공증절차를 거치도록 돼 있다. 한국일보는 이와 관련해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 등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나눔의집 간호사가 2014년 4월 작성한 배춘희 할머니 관련 간호일지. 나눔의집 내부고발 직원 제공

배 할머니가 119구급차를 불러 입원한 시간은 아직 불명확하다. 만약 오후에 입원을 했다면 오전에 기부약정서를 작성했을 가능성이 남아도 법조계에서는 상속인에 의한 재심 청구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경기도의 나눔의집 특별점검에서 후원금 부정 사용이 다수 확인된 것도 이전과는 달라진 점이다.

현재 배 할머니의 직계가족은 모두 사망했고, 형제자매들의 자손들만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고발 직원들을 대리하는 류광옥 변호사는 “재판 중에 이 기록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판결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며 “당시 재판부는 법리를 따지기보다 나눔의집이란 시설의 특수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상속인들은 충분히 사문서 위조나 사기 등으로 법적 다툼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