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애플이 ‘꿈의 시가총액’으로 불리는 1조달러(약 1,200조원)를 기록한 이후,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이 차례로 ‘1조달러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을 통해 이들 기업의 앞 글자를 딴 ‘마가(MAGA)’의 경제효과를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는데, MAGA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대선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의 약자이기도 하다.
디지털 플랫폼을 보유한 대형 IT 기업들, 이른바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글로벌 자본시장의 쏠림 현상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일례로 2020년 5월 현재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장가치는 약 1조4,000억달러(약 1,700조원)로, 우리나라 상장기업 2,353개사 전체 시가총액의 합(약 1,600조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뿐만 아니라, 이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추산액(약 2,000조원)의 85% 수준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기도 하다.
이 같은 부의 편중 현상은 이들 빅테크 기업들이 태생적으로 국제화의 성격을 띠는 ‘본 글로벌(Born Global)’ 기업이라는 데 기인한다. 즉, 복잡한 국제 무역 절차를 거쳐 물리적 재화를 거래해야 하는 전통 제조업과 달리, IT 산업은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고 있는 인터넷과 물리적 제약이 없는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국경으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라 급속한 확산도 가능하다.
문제는 이러한 본 글로벌 산업의 승자독식과 불평등 현상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 스마트폰 운영체계의 99.5%를 구글과 애플이 독차지하고 있으며, PC 운영체계의 77%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독점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 스마트스피커의 60% 이상을 아마존과 구글이 점유하고 있으며, 모바일 검색엔진의 95%와 PC 브라우저의 67% 역시 구글 몫이다.
우리나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글로벌 IT공룡들이 이용자도 콘텐츠도 데이터도 수익도 모두 쓸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국내 영상광고 시장의 약 70%는 구글과 페이스북 차지이며, 오피스프로그램 시장의 70%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져간다. AI와 빅데이터 확산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클라우드 역시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이 이미 시장의 60%를 잠식했다.
이처럼 국경도 산업도 구분하지 않는 빅테크 기업들의 문어발식 사업 영역 확대로 인해, 국내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힘을 모으는 전방위 동맹으로 맞서야 하는 상황이다. 본 글로벌이라 할 수 있는 IT산업에서는 전 세계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만 줄을 세워 편을 가르고 ‘공정경제’를 외치는 것처럼 편협하고 우매한 일은 없을 것이다. 국내의 대표적 인터넷 기업인 네이버나 카카오는 물론, 디지털 융합 신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는 통신 3사를 비롯한 대기업들 모두 MAGA와 같은 글로벌 시장 지배자들 앞에서는 약자이고 후발주자들일 뿐이다.
본 글로벌 산업의 약자와 후발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규제의 채찍이 아니라 보호와 육성의 당근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정부가 ‘한국형 디지털 뉴딜’을 통해 대형 IT 프로젝트를 과감히 추진하고 국내 IT 산업을 적극 육성하기로 한 것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또한, 대기업 지주회사의 벤처캐피털(VC) 설립 허용 등 민간 투자 확대를 위한 다양한 규제 혁파 방안과 임시투자세액공제 재도입 등 여러 세제 혜택 방안이 함께 논의되고 있는 점도 매우 고무적이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의 돌파구가 되어줄 ‘디지털 경제 시대의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민관이 힘을 모아 국내 IT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승화 데이터분석가ㆍ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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